[충북의 무형문화재 이야기]<4>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보호법이 분류하는 문화재는 모두 4종입니다.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기념물과 민속자료가 그것입니다.

이를 지정 주체에 따라 다시 나누면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나뉘는데 국가지정은 문화재청에서 담당하고 시·도지정문화재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지정 주체가 됩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국가가 관리의 주체로 나설 만큼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또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큰 무형의 문화적 소산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전승자를 흔히 보유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약칭으로, 법률 상 바른 호칭은 기능종목일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예능종목일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불러야 합니다.

충북에는 얼마나 많은 무형의 자산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까요. 현재까지는 모두 세 종목이 지정됐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입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충북에서 활동하는 중요무형문화재와 보유자들의 삶을 소개한다. 영혼을 위로할 양으로 주철장의 길을 걷는 원광식, 스승의 참뜻을 이어 금속활자의 맥을 잇는 금속활자장 임인호, 낭만적 무예인 택견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정경화가 주인공이다.

1970년대는 국내의 종 제작이 교회 종에서 사찰종으로 이동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종장의 소명의식으로 범종을 만들기 시작한 원광식은 입버릇처럼 '절대 종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 세계 종 제작방식을 익혔지만 그는 우리의 범종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는 범종이 영혼을 깨우고 위로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금속활자장 임인호의 작업은 노동의 연속이다. 고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닦지 않으면 원하는 글자를 얻기도 어렵다.

금속활자를 통해 인쇄문화의 부흥을 바라는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최연소 보유자다. 택견의 품세는 우스꽝스럽지만 무예를 지탱하는 정신에는 민속문화에 대한 열정이 숨쉬고 있다. 외유내강의 곡선적 아름다움이 택견의 힘이고 멋이다.

낭만적 무예의 부드러움

■택견과 정경화

택견은 흔히 외유내강의 곡선적 무예로 표현된다. 자신의 힘을 들이기보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공격보다는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택견은 호신무술이면서 동시에 정신 수양을 위한 무예로 소개되기도 한다.

다른 무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능청거림과 우쭐거림은 택견의 고유한 보법에서 비롯된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어 보이며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움 속에서 발차기도 나오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니 결코 얕잡아 볼 수가 없다.



택견은 굼실굼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흐느적거리는 것도 같지만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위력을 내장하고 있다. 작고한 인간문화재 신한승 선생에 의해 체계화돼 지금은 정경화(58) 씨가 맥을 잇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무예종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택견은 크게 서기택견과 결련택견으로 나뉜다. 서기택견이 위험한 기술을 배제한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면, 결련택견은 급소를 공격하거나 주먹질을 하는 싸움 택견이다.

택견을 구성하는 요소는 삼각보법으로, 굼실굼실 움직이는 품밟기와 손놀림으로 이루어지는 활갯짓, 공격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발질로 구성돼 있다. 품밟기와 활갯짓, 발질을 통해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지게 하고 공격을 둔화시킨다면, 굼실거림을 통해서는 충격을 완화한다.

택견 보유자 정경화씨는 택견의 원리를 약함에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강해지기 위해 무예를 하지만 그것을 조율하는 것은 약함에 있다고 강조한다.

택견의 수련과정은 혼자서 익히기(기본연습), 마주메기기(상대연습), 견주기(맞서기) 등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품밟기와 활갯짓, 발질의 낱 기술이 혼자 익히는 기술이라면 마주메기기는 상대가 있어 메기고 받는 실제 수련과정을 말하며 맞서기는 택견의 모든 기술을 활용해 실제 겨뤄보는 수련과정을 뜻한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은 방어적 성격이 강한 서기택견이며, 신한승 선생에 의해 복원된 결련택견은 12가지의 기본수가 전승되고 있다.

택견은 종로 택견 명인인 송덕기 선생과 왕십리 택견의 명인이면서 종로택견과 구리개택견, 살곶이 택견을 두루 전수받은 신한승 선생에서 다시 정경화 씨로 이어지는 계보를 잇고 있다.

택견에 입문한지 30여년이 된 정경화 씨는 스승의 뜻을 이어 택견의 원형을 전승하고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택견의 메카인 충북을 알리고, 택견을 대중적 생활무예이면서 전통무예로 육성하는 것이 그가 택견인의 길을 걷는 이유다.

세월 녹인 쇳물 활자가 되다

■금속활자장 임인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이 2013년 4월에 준공된다. 청주시가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의 기능 보존과 전승 기반 마련을 위해 금속활자 주조 전수공간을 확보하기로 하면서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원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전수관이 문을 열게 됐다.

그동안 고향 괴산에서 활동하던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인 임인호(48) 씨도 청주에서 활동하며 시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연풍면 원풍리 마애불좌상과 이웃한 거리에서 무설조각실을 운영해온 그는 2009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최연소 기능보유자가 됐다.

스승 오국진 선생을 여읜지 1년 9개월만에 받은 금속활자장 칭호가 그에겐 여전히 무거운 듯 했다.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괴목이나 만지고 남의 간판이나 절의 현판만 파는 시골 촌부에게 장인의 길을 걷게 해준 주인공이 바로 스승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겐 스승이 곧 부모다.

지난 1996년 처음 오국진 선생을 알았다. 그 해는 스승이 금속활자 복원에 성공해 중요무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된 해이기도 했다. 스승과의 마음은 시골 각수(刻手)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그렇게 금속활자장 이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청주로 출퇴근하며 금속활자에 대해 배웠고 그 사이 2000년에는 이수자가, 2004년에는 전수조교가 되었다. 그는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의 삶이 금속활자장의 길을 걷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려운 시절을 건넜다. 막노동을 하면서 미장도 하고 조적도 하고 형틀목공도 하고 용접까지 해야 했다. 몸은 고됐지만 그럴수록 기술은 만능이 됐다. 연풍의 무설작업실도 스스로 지었다. 쇠를 다루고 활자를 만드는 이 직업에서 그가 걸어온 고된 노동은 꼭 필요한 항목이었고 삶은 수업의 연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금속활자장은 다기능보유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자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나무를 다룰 줄도 알아야 하며, 톱질은 물론이고 쇠를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능만큼 중요한 것이 인성이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쇠를 다루며 깨달았다고 한다.

목활자는 글씨를 대고 파는 작업이기 때문에 실수가 적었지만 틀을 만들어야 하는 금속은 예측이 불가능 했다. 쇳물을 부을 때도 감정을 조절해야 했다. 쇠가 어느 정도 차오르고 있는지 손끝과 마음으로 느끼려 노력했다.

금속활자 주조방법은 모두 두 가지. 조선시대 관주활자와 왕실활자를 주조하던 주물사주조법과 고려시대 금속활자 주조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청되는 밀랍주조법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이건만 그는 지금도 마지막 쇳물을 부을 때만큼은 처음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인내와 집중의 연속이지만 단 한 순간도 무료하거나 실증을 내 본 적이 없다고 하니 '금속활자장이 운명'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는 금속활자의 계승 못지않게 인쇄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지의 고장 청주, 충북을 뒷받침할 만한 인쇄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리로 영혼을 위로하다

■주철장 원광식

소리는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주철장을 만나 종 소리를 들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맑고 은은했다. 시작은 장엄했으며 끝으로 갈수록 여운이 길었다. 소리가 없어진 자리엔 진동이 메아리를 만들고 깊은 울림은 불안한 영혼까지 달래주는 듯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 원광식(71) 씨는 진천군 덕산면 합목리의 성종사에서 종을 제작하고 있다. 성종사 2층 전시장엔 스무개가 넘는 범종이 보관돼 있는데 그는 다른 모양, 다른 크기를 하고 있는 종의 당좌를 일일이 쳐보이며 우리나라 범종의 아름다운 울림을 들려주었다.

당좌를 치는 순간, 댕~ 소리가 10초 정도 계속되더니 다음에는 우~웅~우~웅하는 떨림이 리듬을 타고 울려퍼졌다. 원음이 사라지고 시작되는 이러한 소리를 맥놀이라고 부르는데 서양 종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 범종만의 특징이다. 소리는 커졌다가 작아지고 다시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귓속 깊숙이 스며든다.

우리나라 대표적 범종인 성덕대왕 신종의 아름다운 소리도 맥놀이를 통해 완성된다. 조상들은 종의 두께를 비대칭으로 만들고 종 안쪽 표면을 균일하지 않게 처리함으로써 맥놀이 현상을 만들었다. 범종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종장(鐘匠)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세계 어떤 종과 견주어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종이 우리 범종이라고 했다.

범종 제작 방식에는 밀랍주물법과 사형주물법이 있다. 밀랍주물법은 밀랍(벌집)과 소기름을 배합한 밀초를 사용해 만들고 사형주물법은 지문판을 사용해 외형에 문양을 찍어 새기는 방법으로 철제 범종을 만들때 주로 사용한다.



그는 종을 만들어 깨어 보기도 하고, 잘라 보기도 하면서 종의 학문적 원리까지 깨우치게 됐다. 국내 유명 사찰의 큰 범종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드물었다.

범종의 진동은 귀에 닿아도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말이 있다. 듣는 이의 정신을 일깨우는 지혜의 소리라는 것인데, 이는 종을 만드는 종장의 혼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맑은 소리, 뚜렷한 맥놀이, 긴 여운. 우리 범종의 고운 소리는 그렇게 완성됐다. / 김정미

※자료협조 :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