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수희씨

"해고는 살인이다"

이 말을 처음 봤을 때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잘 뽑은 카피라는 생각을 했다. 이 말에 담긴 뜻이 무척이나 잔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말만큼 뜻을 또렷하게 담아내는 그 어떤 구호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고는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정이 깨지고, 삶이 무너지고, 그리고 끝에는 정말 제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이제까지 스물두명이 죽었다.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고 한다. 공지영 작가가 쓴 르포 '의자놀이'도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싸웠던 날들이 있었다. 당시 구호는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였다. 그들은 삼보일배도 하고, 두드려 맞기도 하면서 180여 일을 싸웠다.

당시에 전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그 싸움, 집회에도 기자회견에도 시국선언 등에도 참여하긴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를 제대로 헤아리지는 못했다. 그들이 어떤 아픔을,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간절히 외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잊고 살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 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장을 지켰던 그들. 그리고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쫓기고 두드려 맞으며 피를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아주 가끔씩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자살 소식을 들었고 놀랐다. 그렇지만 또 잊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스물두번째 죽음까지 보게 된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평택에 가자는 이야기들의 많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와락센터에 적은 후원금을 낸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의자놀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값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쓰인다고 해서 얼른 책을 구입했다.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비겁하긴 마찬가지다.)

'의자놀이'를 읽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공지영은 부끄러웠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제대로 몰랐고 관심을 두지 않았노라면서….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끄러움도 컸다. 그저 마음만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더이상 희생자가 있어선 안된다'라고만 생각했다.

"분노하라"

공지영이 말했듯 나 역시 영화 '두개의 문'을 보면서 그 말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 국민들이 용산참사를 그냥 받아들여줬기에 쌍용자동차 사태도 있었던 거라고. 맞는 말이다. 최근 용역에 의한 노조 와해 시도와 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두드려 맞는 동안 국가와 경찰은 오히려 용역 뒤에 숨어 모른척했다.

'의자놀이'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더이상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노동자의 권리 따위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나도, 당신도, 나의 친구도, 나의 이웃도 고용불안을 겪는 처지가 돼버렸다.

고용불안, 팍팍한 삶, 불안한 삶, 존중받지 못한 인권,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국가 폭력 앞에 더이상 무기력하고 나약해질 순 없다. 정치를 바꾸면 해결될 수 있을까? 좋은 정치가 좋은 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던 한 선배의 말을 곱씹는다. 과연 그럴까?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앉기 위해 다른 이를 밀쳐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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