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위원·마케팅국장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겠습니다' 청주의 명물인 흥덕구 휴암동 가로수길을 지나다보면 길옆에 충북적십자사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맨위쪽에 붉은바탕에 하얀글씨로 큼직막하게 쓴 글 내용은 이곳을 지날때마다 유독 눈길이 간다.

남모르는 어려움에 처해있고 각박한 현실에 소외되고 속상한 사람들은 그 글이 새삼스럽게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적십자사가 도민 눈물을 닦아줄 입장이 못되는것 같다. 오히려 도민들이 충북적십사를 안타까워하고 미래를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비영리 봉사단체로 각종 재해의 현장에 뛰어들어 희생적인 봉사정신을 발휘해 늘 밝고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던 충북적십자사가 최근 회장선출이후 충북도와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파행이 길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난 현실적인 관행과 비현실적인 원칙(규정)이 충돌하고 여기에 정치적인 논리까지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충북적십자사 규정에 회장은 상임위원회가 선출하는것으로 돼있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신임 회장이 선출됐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충북도 시각은 다른 것 같다. 적십자사는 자치단체와 밀접한 업무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도가 회장선임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고있다. 해방이후 충북적십자사 회장은 명예회장인 도지사의 추천으로 결정된 것은 이때문이라는 것이다.

관행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도지사가 바뀔때마다 유관단체장들이 곤혹을 치렀다. 지방선거때마다 특정후보에게 줄을 섰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지사의 추천을 받은 남기창 전 청주대교수는 지난 지방선거때 민주당 충북선대위원장과 민선 5기 충북도정 기획단 단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전임 김영회 회장은 정우택 의원과 밀접한 관계다. 그는 정 의원이 2006년 지방선거에서 도지사에 당선된뒤 '지사 직무 인수위원장'을 맡았으며 그해 8월 도의 추천으로 회장직에 올랐다.

누가 누굴 탓할 입장이 못된다. 남 전교수에 대해 '낙하산'이라는 비판도 궁색하다. 이때문에 충북적십자 상임위원회가 정치적인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 문제는 대한적십자사(한적)까지 파급됐고 한적은 이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적 회장단은 당선자 인준을 해주기는 커녕 당선자를 불러 "적십자사를 사랑하면 알아서 처신해 달라"고 사퇴를 압박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적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역자치단체의 행정적인 힘을 무기로 역대 지사의 인사권이 미쳤던 충북적십자사가 이제와서 지사의 추천을 배제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한적조차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결국 순수 봉사단체이자 비영리특수법인인 적십자사도 자치단체에 예속될 수 밖에 없고 회장선임도 도지사의 정치적인 영향력 안에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밝혀진 것이다.

이때문에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충북적십자사 사태가 어떤식으로 결론이 나도 충북도와 적십자사 모두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연간 16억여원에 달하는 충북적십자사 예산은 도민 성금으로 충당한다. 충북도가 적십자사에 내는 회비는 단돈 200만원이다. 정작 성금을 내는 도민들은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데 회장이라는 감투 때문에 충북도와 충북적십자사가 공방을 벌이고 벼랑끝 대치를 보이는 모습은 보기가 흉하다.

충북도나 충북적십자사 모두 귀한 시간을 쪼게 봉사하는 5천700여명 자원봉사자와 팍팍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적십자 회비를 내는 도민들의 마음을 단 한번이라도 헤아려봤는지 궁금하다.

갈등을 봉합하고 조속히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도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