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두꺼비

 옥천이 가장 자랑하는 사람은 역시 정지용 시인이다. '넓은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되는 '향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이자 노래다.

 그러나 옥천 청산면 교평리 출신 작곡가 정순철을 아는가?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함께 걷던 대학 1학년 녀석이 이 노래를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빛나는 졸업장을~'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는 아마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정순철이다. 정지용 시인보다 더 유명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청산면에 들어서니 '동요작곡가 정순철님의 동요의 거리'라며 간판을 붙여놓거나 혹은 동네 담벼락을 활용하여 정순철의 일대기를 그려놓았다. 청산면 차원에서는 정순철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동네를 돌아보며 정순철의 일대기를 확인해 본다. 정순철은 1901년 옥천 청산면 교평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옥천역에서 화물열차를 숨어 타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보성고를 졸업한다. 당시 장안 멋쟁로 '몸매가 잘 빠지고 모양새가 좋음'이라고 담벼락 그림에 적혀있다.

 1922년 일본 유학시절 방정환을 만나 색동회를 창립한다. 이어 1929년 정순철 동요집을 출간하여 '짝짜꿍', '물새', '까치야', '자장가', '어머니'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46년 '졸업식 노래'를 발표한다. 이후 6·25전쟁이 끝나고 행방불명이 된다. 여기까지가 작곡가 정순철을 마을 그림에서 소개한 내용들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이렇게 유명한 작곡가 정순철이 왜 부각되지 못했던걸까?

 충청리뷰 홍강희 기자가 '도종환 시인, 음악가 정순철 살려내다'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통해 정순철을 왜 기억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사에 의하면 도종환 시인이 '정순철 평전'을 정순철기념사업회 이름으로 발간했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도종환시인은 "정순철은 6·25전쟁 때 납북돼 잊혀졌다"며 정순철은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의 외손자로 손병희 선생이 마련해준 가회동집에 살면서 손병희의 딸과 결혼했다고 했다.



 정순철의 삶의 기반이 되었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 활동과 어린이 잡지에 동요를 작곡해 발표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 '반달'의 윤극영, '오빠생각'의 박태준, '봉선화'의 홍난파 등과 함께 1920~30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요 작곡가로 동덕여고, 무학여고 음악교사로 살았음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정순철과 방정환이 만나 '지덕체를 겸비한 쾌할한 소년 양성'을 목적으로 창립된 '천도교 소년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어린이 문화운동이자 인권운동으로 '사람을 한울처럼 섬겨야 한다면 어린이도 한울처럼 섬겨야 한다'는 동학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작곡가 정순철을 청산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가세거리의 모짜르트 생가처럼, 본의 베토벤 생가처럼 많은 여행객들이 한번쯤 들러볼만한 명소로 청산면을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청산에서 정순철의 생가터를 알아보려고 이곳저곳 물어가며 다녀보았지만 찾지는 못했다. 이제부터 작곡가 정순철을 화려하게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http://blog.daum.net/toad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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