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햇빛창공

 여름의 끝자락 시큰둥하게 연일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는 시간만큼 일은 층층이 쌓여만 가고 영글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바라보다 빗줄기가 멈칫거리기라도 하면 냉큼 달려나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한바탕 움직이고 나면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그것이 몸을 흠뻑 적십니다.

 비가 내리면 특별히 그리운 맛이 있습니다. 빗방울의 향기와 어울리는 면 요리, 그 중에서도 홍두깨로 밀어 만든 어머니의 손칼국수가 그렇습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느닷없이 생각나는 손칼국수, 제대로 된 어머니의 홍두깨 손칼국수의 맛을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아주 오래된, 그러니까 30년도 더 됨직한 홍두깨와 커다란 국수밀판은 여인의 흥얼거림을 겹겹이 쌓아두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쓰셨던 홍두깨가 지금은 서툰 손놀림의 며느리에게 잡혀 있습니다.

 밀가루와 검은 콩가루를 섞어 30분 정도 숙성시킨 반죽을 적당한 힘을 주어 밀고 당기고 방향을 바꿔가며 몇 번인가 밀가루를 뿌려가며 반복하다 보면 요술처럼 반죽은 점점 얇게 펴집니다. 리듬을 타는 어머니의 손놀림에 비하면 뭔가 어색해 보이지만 제법입니다.

 시중에 파는 손칼국수의 맛과 집에서 밀어 만든 손칼국수의 맛의 차이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손칼국수집이라고 해서 직접 홍두깨로 반죽을 미는 곳을 찾기는 힘듭니다. 반죽기로 반죽하고 기계로 밀어 칼로 써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적당한 두께로 밀은 반죽을 포개어 썰 준비를 합니다. 칼맛이 가미되는 순간입니다. 넓고 좁은 칼질에 따라 입속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달라집니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칼질 솜씨가 늘었습니다. 또각또각 엇박자를 내더니 이제는 리드미컬하게 들립니다. 그 소리에 괜시리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요.

 칼질이 끝날 즈음이면 불에 올려진 냄비엔 멸치와 다시마, 양파가 들어간 육수가 끓기 시작합니다. 손칼국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겉절이를 만들기 위해 아내의 손은 바빠집니다. 뒤뜰에서 채취한 약간의 나물과 부추를 섞어 상큼하고 얼큰하게 배추겉절이를 무쳐냅니다.



 칼국수가 익어가면 채 썬 호박과 부추만 넣으면 충분합니다. 맛있으라고 이것저것 많이 넣으면 손칼국수의 담백함은 오히려 사라집니다. 홍두깨로 민 손칼국수와 배추겉절이면 환상의 궁합입니다.

 제대로 된 손칼국수도 맛 보았으니 이제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농부는 일이 밀려 애가 타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thdgk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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