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추석을 앞두고 출하할 배들이 강풍에 모두 떨어졌어요."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한 직후 떨어진 배를 바라보는 과수농가의 표정은 참담함을 지나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내 평생에 이런 꼴을 처음 겪어요."

70대 농민은 "배 농사를 지으려고 농협에서 영농자재를 외상으로 빌려왔는데 갚기는커녕 먹고 살 길조차 막막해졌다"며 TV 앞에서 울먹였다.

28일 한반도를 덮친 태풍 '볼라벤'은 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들을 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하늘을 원망하는 눈빛들로 가득하다.

"길었던 폭염도 잘 이겨내고 수확을 막 앞두고 있었는데…."

이번 태풍은 서해안 지역에 가장 많은 피해를 안겼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낙과 피해, 특히 전남의 배와 전북의 사과 피해가 컸다.

비닐하우스를 엿가락처럼 휘게 한 태풍 때문에 1년 농사를 망친 농심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졌다. 수산업의 피해도 엄청났다. 어선 42척과 해상 가두리 양식 시설 10만8천여 칸이 파손되고, 기르던 광어와 전복은 무더기로 폐사됐다.

소와 돼지 등 가축이 폐사하고 양봉에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는 등 실제 피해규모는 발표된 것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기다렸다는 듯이 채소와 과일, 수산물 가격은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는데 또다시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덴빈'이 서해상을 따라 북상 중에 있다는 소식이다.

슬픔을 딛고 복구에 나서랴, 추가 태풍 대책을 세우랴,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들의 타는 속마음을 그 누가 알까?

피해를 당한 농가나 어민들에게는 정부 차원의 보상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픔에 젖어 삶의 의욕마저 잃은 이재민들에게 긴급 봉사활동과 함께 격려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IMF라는 국가 외환위기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국가의 부도위기를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에 나서 어려움을 극복한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성공경험을 갖고 있다.

국가 환란도 나눔 정신으로 해결해 돌파구를 찾았던 저력을 발휘하여 이제는 태풍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다.

우리는 예로부터 슬픔을 나눌 줄 아는 민족이었다.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발족과 더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개인 고액 기부자 클럽 '아너 소사이어티'를 결성했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기업윤리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흔히 나눔은 뺄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색한 사람들은 나눔이 내 몫을 줄일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나눔은 뺄셈의 개념이 아니다. 나눔은 덧셈이다. 하나이던 내 것을 나누면 두개가 된다. 나눔은 파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눔의 결과는 상생작용을 통해 기쁨과 감사, 보람의 마음을 키워 내 생각과 마음을 커지게 하는 나눔의 미학을 가져다준다.

수입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여 '기부 천사'로 불리는 가수 김장훈처럼 나누는 사람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나눔을 뜻있게 만들고 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이재민들을 향한 나눔의 손길이 태풍으로 기쁨을 앗아간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링의 손길로 확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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