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권태봉 청주 일신여고 수석교사

지난달 말 우리반 학생들과 삼겹살 잔치를 했다. 삼겹살 잔치는 학생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서로 친해지는 행사다. 행사는 고3 같으면 여름 방학이나 수능시험 후에 하고 1, 2학년이나 중학생들의 경우 봄이나 가을 날 쉬는 토요일에 학교 잔디밭이나 운동장의 나무 그늘에서 하면 좋다. 나는 돼지고기(삼겹살 11근 목살 11근)와 파나물무침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모둠별로 준비하게 한다. 삼겹살을 실컷 먹고난 후 홀수짝수 번호를 나누어 아이스크림내기 피구를 한다든가 모둠별로 장기자랑을 하게 하면 좋다.

삼겹살 잔치하면 특별히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7년전 학생들과 삼겹살 잔치를 마치고 집에서 쉬려고 하는데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실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ㅇ'학생이 배를 움켜쥐고 교실바닥에 뒹굴며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실장에게 인근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너무나 고통스러워해서 걸어서 가기는 힘들다고 했다. 어떡해야 하나 난감했다. 우선 119에 알리겠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니 학생의 부모님께서 신고했다고 했다. 학생의 부모님은 ○○ 콘서트를 보러 서울로 가는 중인데 중부고속도로 음성지역을 지나고 있는데 다시 돌아오겠다며 119 구급차나 병원 구급차 중에서 더 빨리 오는 차를 타고 병원에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도 부랴부랴 집을 나서 밖으로 나오는데 전화가 왔다. 'ㅎ'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것이다. 얼마 후 병원에 가보니 'ㅇ'학생의 언니(언니도 우리학교에 다님)도 와 있었다. 모두가 근심스런 표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프로정신(?)을 발휘해서 비디오 카메라로 'ㅇ'학생을 촬영하려하니 담당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환자는 지금 말도 못할 정도로 몹시 아픈 상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ㅇ'학생은 얼굴이 창백해져 있고 간간이 신음소리를 냈다. 나도 걱정이 많이 됐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학창시절의 추억이 될 것 같아 촬영하려 했는데 그때 그 간호사는 나를 엽기적인 교사로 생각했을 것 같다.

얼마 후 담당 의사로부터 학생의 상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아픈 원인은 대략 네 가지로 급체일 가능성, 생리통일 가능성, 변비일 가능성, 맹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맹장일 가능성에 대비해 채혈을 했는데 그 결과는 몇 시간 후에 나오고 변비일 가능성에 대비해 배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곧바로 'ㅇ'학생의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우선 학생을 잘 보살피지 못하고 아프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니 오히려 부모님께서 담임선생님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담당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를 학생의 부모님께 설명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병원에는 제가 있으니 급하게 서둘러서 오시지 말라고 했다.

'ㅇ'학생의 부모님께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는 했지만 정작 걱정은 내가 하고 있었다. 혹시 큰 병은 아닐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학생의 부모님이 왔다. 부모님은 내가 위로할 틈도 주지 않고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시려고 행사를 했는데 딸로 인해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미안해했다.

부모님과 내가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사이 학생의 아픈 원인이 나왔다. 병명은 변비라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변비라면 본인이 알고 있었을 텐데…. 못 보면 알아서 적당히 먹을 것이지…. 'ㅇ'학생은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다보니 맛있는 분위기에 취해 변비도 잊어버리고 후식으로 제공해준 수박까지 책임량(?)을 다 먹었다는 것이다.

변비 치료는 아주 간단했다. 관장만 하면 금방 좋아진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치료실에 가고 몇 분 후 멀쩡하게 응급실로 왔다. 'ㅇ'학생은 선생님 죄송해요 라고 미안해했다. 이제 사진을 찍자. 민망해하며 극구 사양하는 학생에게 비디오 촬영은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이러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거야. 'ㅇ'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이 일은 저 졸업할 때까지 비밀로 해 주셔야 해요."

작년인가 대학 4년생으로 어엿한 예비교사가 되어 교생 실습을 나왔다. "이제는 그때 일을 말해도 되는거지?" "아니요 제가 교생실습 기간이잖아요 선생님."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찍은 사진을 봤다. 그 순간에도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 이런 제자들의 스승으로 산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 taebong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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