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변광섭] 순결한 사랑·청춘의 꿈 키운 내 인생의 책 한권

여러분은 책에 대한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지요? 한 권의 책 때문에 가슴 뜨거운 열정으로 살기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도 하며 굴곡진 삶의 마디마디에서 좌절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는지요? 이처럼 좋은 책, 좋은 글은 좋은 생각을 갖게 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담금질하고 새로운 창조적 가치를 담는 등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필자는 중학교 때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와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으면서 느꼈던 들뜬 마음과 설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구경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집 형들이 읽던 책을 빌려와 읽고 또 읽었지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어린왕자를 따라 우주여행을 하고, 양치기 소년의 순결한 사랑 앞에서 가슴 시린 나만의 사랑을 꿈꾸곤 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도올 김용옥의 철학서적과 이어령 전 장관의 문화일반 서적, 그리고 근현대의 아픔을 담은 대하소설을 읽으며 청춘의 꿈을 키웠지요. 그 끝을 알 수 없는 동양철학의 세계를 항해하며 인간의 존재가치를 찾고자 했고, 우리만의 문화 DNA 속에 풍덩 빠져보고 싶은 요량으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고난의 역사를 쏟아지는 활구(活口)로 이해하고 호흡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여행서적과 예술비평서를 많이 읽습니다. 문화유산 순례기에서부터 역사·미술·철학 등 인문학을 다룬 책, 세계 각국의 박물관·미술관 여행을 소재로 한 책과 도시 뒷골목 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에 이르기까지 낯선 땅, 낯선 도시의 속살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출장길에는 항상 가벼운 책 한 권이 동반자가 돼 주는데 말 많은 친구나 까칠한 여인보다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기쁘게 해줍니다.

한 구절의 시를 통해 내 가슴이 잔잔한 감동으로 물결치기도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라는 시를 읽다 보면 '떠나라 낯선 곳으로/그대 하루하루의/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구절을 만나게 되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꿈과 미래, 새로운 세상을 위해 기꺼이 일어나 자박자박 걸어가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글은 내 가슴을 때리고 울리기도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노래한 '단풍드는 날'은 늦가을 산사를 걸으며 읽었지요. 지난해 공예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열린 '가을의 노래, 시인의 노래'에서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며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했지요. 그날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지는 눈물과 천둥같은 심장소리에 몸과 마음이 혼미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에서 '푸른 바다에는 고래가 있어야지/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청년이 아니지'라고 노래했는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꿈, 희망, 열정, 사랑이라는 고래를 키울 수 있도록 하지 않았던가요.

이처럼 우리는 한 권의 책, 한 구절의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삶, 한 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현실의 벼랑 끝에서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일어서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번잡한 일상을 펄떡이게 하고 새로운 꿈을 빚게 합니다. 생의 뒤란에서 서성대지 않고 구걸하지 않으며 뒷걸음질 치게 하지 않습니다. 쏟아지는 햇살처럼, 나그네에게 휘파람 불어주는 바람처럼, 몸과 마음을 번뜩이게 하는 녹음방초처럼 시원시원하고 정직하고 비옥함을 건네줍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한 권의 책과 함께 눈부신 고립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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