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사형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형벌이다. 그러나 20세기부터 많은 국가에서 사형제를 폐지하고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형으로 전환하였다.

현재 전 세계 197개 국가 중에서 법이나 관행으로 사형 제도를 존속하고 있는 나라는 58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9개국은 중대 범죄에 한해 사형 제도를 유지할 뿐 나머지 95개국은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함 셈이다. 35개국은 사형제도의 집행을 허가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으나, 적어도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사형을 집행 시 교수형, 전기의자, 독극물 주사, 총살형, 참수, 독가스 등 다섯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조지아주에서는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언도를 받은 흑인 트로이 데이비스를 독극물 주사로 사형을 집행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한국은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된다. 1997년 12월 흉악범들을 한꺼번에 사형시킨 이후 15년째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나주 초등생 성폭행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사형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가장 먼저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도 (사형제는) 있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청와대가 지난 3일 사형제 부활 여론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박 후보의 '사형제 존속' 입장을 비판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사형제도가 예방과 처벌에 효과적인지 여전히 논란이 많고, 유신정권 시절 인혁당 법정살인에서 볼 수 있는 '억울한 죽음', '정치적 죽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면서 "박근혜 후보는 사형집행 재개의 섣부른 검토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한국의 처벌 기준은 해외 각국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다. 때문에 최근 나주 초등학생 납치ㆍ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아동 대상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양형을 담당하는 법원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은 그 상처가 두고두고 남는다고 한다. 실제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도 기회만 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보복을 하겠다는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성폭력 피해 아동의 절반 이상은 외상 후 후유증으로 평생 스트레스 증후군과 대인 기피증 등 정신의학적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감옥에서 나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다면 이는 엄연한 불공정거래 행위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이 있다. 겉보기에는 사람인데 속은 짐승과 같다는 뜻이다. 나주 초등생 성폭행범을 비롯하여 친조카를 무려 7년 동안 성폭행한 큰아버지, 어린 친딸을 상습 성폭행한 30대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득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갸루상'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성폭력범은 사람이 아니므니다. 짐승이므니다."

인간은 한자로 人間이라고 쓴다.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함께 살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라고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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