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강석범 청주미술협회 부회장

2008년 교원 인사이동으로 인하여 괴산 화양동 넘어 '松面'이라는 지명이 낮선 '송면중학교'에 발령이 났다. 대학시절부터 화양동 계곡은 여름이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고, 근처의 학생수련시설은 충북(청주)지역 소재 중·고등학교에서는 한번쯤 야영활동을 실시하는 곳이기에 오히려 익숙하기도 했다.

그런데 화양동 바로 넘어 송면이라는 곳은 굉장히 낯설었다. 막상 고개를 넘어가니 동네가 햇볕이 가득차고 평지 저 멀리 적당한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모양새가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지리를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곳이 '명당'이라고 하는가 보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마침 예전부터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던 동료교사가 어느 날 점심시간에 '강 선생! 여기서 약 5분 거리에 왕소나무가 있는데 정말 멋지다. 바람쐴 겸 한번 가볼래?'라는 제의에 그저 잠깐 20여분 바람이나 쐬려고 길을 나섰다. 멀리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는데 '크기는 크구나!' 라는 생각만 있을 뿐 의식하지 않고 왕소나무 가까이에 다가갔다.

'아, 세상에….' 나는 그저 멍하니 왕 소나무를 올려다보며 한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세상에 이런 소나무가 있다니. 소나무를 떠나서 이런 나무가 세상에 존재하고, '내가 살아생전 이런 나무를 볼 수 있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왕 소나무의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었다. '천연기념물 290호, 수령이 약 600여년, 높이 12.5m, 둘레4.7m, 꿈틀대는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여 '용송'으로 불림, 성황제를 지내던 신목으로 마을 이름 삼송리(三松理)에서 알 수 있듯이, 가까이에 있었다는 왕 소나무 3그루 중 현재 이 것만 남아있음' 정말이지 이런 소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크기도 크거니와 생김새와 전체 조형미가 완벽할 만큼 아름다웠다. 크기로 인해 웅장함은 기본이고, 섬세하게 꼬여있는 가지들이 마치 인위적인 분재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송면중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필자는 가끔씩 이 왕소나무가 보고 싶어 일부러 몇 번 들러 소나무와 재회하곤 했다. 이런 엄청난 소나무가 지난 태풍으로 쓰러졌다. 뿌리가 송두리째 드러났다.

방송에서 소식을 접하고는 지난주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왕 소나무를 보러 갔다. 벌렁 드러누운 소나무의 모든 나뭇가지를 붕대로 칭칭 감고 각종 지지대로 기대어 빌딩 기초공사에서나 볼 수 있는 상태로 보존공사가 진행되었다.

다행이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솔잎들이 아직 생기가 남아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지만,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살아있는 조형물이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은 큰 상실감으로 되돌아왔다.

몇몇 관심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연신 왕소나무 주변을 서성거린다. 때론 긴 한숨, 때론 카메라로 찰칵찰칵, 대체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라는 물음과 대답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간절히 기원했다. 제발 드러누운 채라도 살아서, 600년 위용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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