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햇빛창공] 껍질 벗긴 '으름''한국 바나나'

어린시절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따 먹었던 열매가 참 많다. 밤과 도토리는 물론이고 머루와 다래, 깨금이라 불리었던 개암,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한국 바나나'라며 먹었던 씨앗 투성이 으름도 있다.

늦은 오후 모처럼 이웃마을 저수지 주변 오솔길을 준하와 걷다가 커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 속에 주렁주렁 열린 으름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레 가슴이 쿵쾅거리며 설렌다.

자연산 으름, 이 으름을 발견하고는 위를 올려다보니 주렁주렁 열려있다. 많다. 하지만 높다. 저걸 어떻게 다 따 먹을까.

으름의 잎은 다섯 개의 소엽이 긴 잎자루에 달려서 장상으로 퍼진다고 사전에 나와 있던데 이것은 잎이 여섯 개다. 간혹 여섯 개 짜리도 있다고 한다. 소엽의 수가 여덟 개가 있는 '여덟 잎 으름'도 있다고 한다. 참 아름다운 배치다. 자연은 자연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대부분 덩굴식물이 그러하듯이 으름도 주변의 나무를 성가시게 하며 성장한다. 줄기가 닿은 주변의 나무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 한줄기 햇살을 품고 열매를 살찌운다.

그렇게 키워낸 열매가 익어간다. 으름은 익어가면서 껍질이 갈라지며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이쯤 되면 맛이 그만이다. 갈라지기 시작한 으름을 찾아냈다. 입안은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추억의 맛은 혀끝으로 느끼는 감각보다 빠른가 보다.

껍질을 벗겨낸 으름은 마치 꿈틀거리는 굼벵이를 닮았다. 보기엔 좀 징그럽지만 냉큼 반쪽을 베어 물었다. 기억 속의 미끄덩거리고 달콤한 맛은 없다. 아직 살짝 덜 익은 것도 있지만 입맛이 예전 같지는 않은 탓이다.

냉큼 먹어치우는 아빠를 본 아들이 손을 내민다. "아빠 나도 줘야지" 준하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준하야 바나나 맛이 어때?" "우엑! 바나나 아니잖아. 아빠 먹어"

나의 어린시절 추억의 맛과 내 아이의 입맛이 소통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세대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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