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이방주]

문득 낙영산이 생각났다. 공림사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하얗게 미끄러지는 암벽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소나무가 그리웠다. 공림사 주변은 온통 붉은 황토다. 쓸데없이 침울할 때 그 붉은 빛만 봐도 생기가 솟는다.

공림사를 거쳐 낙영산에 오르는 길은 걸어 본지 거의 3, 4년은 된 것 같다. 변한 것은 없었다. 도명산, 낙영산, 조봉산 가는 길이 갈라지는 안부까지 올라가는 급경사길에 그늘을 지워주는 활엽수들이나, 그 길에 굴러다니는 어른 머리만한 돌이 예전 그대로이다.

버섯 보따리를 들고 내려오는 이들을 쳐다보려고 고개를 드니 땀이 얼굴까지 흘러 내린다. 눈썹이 성글어진 후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금방 눈을 따갑게 한다.

안부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숨고르기 한 번 없이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정상석만 있는 정상에서 한 5~6분만 더 능선을 타면 정상 아닌 정상에 다다른다. 보기 좋은 바위가 있고, 정상보다 널찍하고, 잘 생긴 소나무가 있다.

게다가 전망이 아주 좋다. 북쪽으로 숲 사이에 도명산이 희끗희끗 얼굴을 내밀고, 동으로 미륵산성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있다. 남으로는 멀리 속리산 줄기들이 줄기차게 뻗어 있다. 그 골짜기 사이로 녹두빛 들판이 풍요롭고, 무더기로 늘어선 마을이 한가하다. 무엇보다 바로 발아래 공림사 잿빛 기와지붕과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길가에 노란 은행나무가 그림 같다.

낭떠러지 바위 끝에 몇 그루 소나무는 재주 있는 사람이 먹으로 툭툭 쳐놓은 것처럼 고풍스럽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느라 밑동이 굵다.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키는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가지가 한 15도쯤 축축 쳐져 있어서 보는 사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엷은 솔잎에 맑은 햇살이 부서진다. 여기 학이라도 한 마리 앉아 있다면 금상첨화겠다고 욕심을 부려 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이다.

평평한 바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시원하다. 문득 소나무가 부러웠다. 사방이 탁 트인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산 아래 세상을 밤낮으로 내려다보며 살아갈 수 있는 이 소나무는 얼마나 큰 복인가?

같은 소나무이면서도 어느 것은 구렁에 서서 볕은 생각조차 못하고, 어느 것은 이런 높은 곳에서 볕을 받으면서 좋은 세상을 조망하고 사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연의 일이나 인간사나 불공평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구렁에 팽개쳐진듯 나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경상도에서 온 듯한 노인들이 올라왔다. 떠들썩하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마도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할 모양이다. 한 노인이 내 앞을 지나 소나무에게 간다.

"야 전망 좋으네. 경관이 그만이고만."

그러더니 한 마디 더 한다.

"소나무야, 니도 이만큼 크니라 고생 참 마이 했데이. 바위 틈에서 사니라고 물 한 모금 모 어더 묵고 을매나 고생스러웠을꼬? 세상 참 불공평하고마. 고로케 고생 했으이 요론데 뿌릴 내리고 살지. 니는 고생 마이 하고 내는 눈에 복이 터졌데이."

심오한 철학을 담은 시 한편을 읽은 기분이다. 섭리를 담은 수필 한 편을 읽은 듯하다. 귀가 어두워져야 세상 얘기가 잘 들리듯, 눈이 어두워야 세상 돌아가는 철리가 더 잘 보인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것은 노인의 눈이다. 노인들의 눈에는 섭리가 보인다. 그것이 되어 보아야 그것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그것이 되어 보는 것은 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보는 소나무와 노인이 보는 소나무가 이렇게 다르다. 나는 우두머니가 되어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일상이 되어 친구가 차린 점심상으로 간다. 방금 사람을 경악하게 화두는 다 잊은 모양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모두가 문인이고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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