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너 내가 누군지 모르나본데 나 정 여사야!"

일요일 밤 온가족을 한바탕 웃음 속으로 몰아넣는 개그콘서트 '정여사' 코너의 대사 한 토막이다.

이 코너는 '정 여사'라는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가 물건을 환불하기 위해 생떼를 쓰는 내용을 희화하고 있다.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란 '악성 소비자'라는 뜻이다. 이들의 목적은 구입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문제를 부풀리거나 조작해 상대를 협박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수법으로 피해보상금을 과다하게 뜯어내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7부는 음식을 먹다가 다쳤다며 음식점과 식품회사에 전화해 거짓말을 한 뒤 치료비를 요구하는 등 모두 800여 차례에 걸쳐 9천여만 원의 돈을 뜯어낸 41살 임모 씨를 구속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임산부를 사칭한 30대 여성의 손 모씨가 전국의 유명 백화점을 돌며 사지도 않은 물건의 환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1천여만원을 뜯어내다가 사기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손 씨는 서울의 한 백화점 수입의류 브래드 매장에서 직원에게 사지도 않은 양말을 들이 밀며 "양말과 함께 세탁하던 고급 속옷에 물이 들었다"며 '양말 세 켤레 값 2만원' '속옷 값 16만원', '왕복 차비 8만원', '정신적 피해보상비 50만원' 등 8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다.

손 씨는 환불 과정에서 매장 측이 영수증을 요구하자 "임산부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화장실에서 피 묻은 휴지를 꺼내와 "당신네 불친절로 하혈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으로 고객을 극진히 모시려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매장에서 이런 고객들을 만나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

승무원, 간호원, 전화를 응대하는 텔레마케터, A/S수리기사, 백화점 안내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이런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은 억누른 채 친절과 미소를 보여주어야 하니 미칠 노릇이다.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는 남의 일이니 웃고 즐길 수 있지만, 막상 당사자인 점원의 입장이 되면 혈압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같은 고객을 만나는 횟수가 쌓일수록 종업원의 심적 상태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은 이런 상태에서 일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고 설명한다. 감정노동은 자기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다른 상황에서 일하는 것을 뜻한다. 육체노동, 정신노동에 이어 현대 사회인들에게 정신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 바로 이 감정노동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서비스업 비율은 58.2%를 넘어섰다. 고객이나 민원인을 상대로 업무를 하다가 심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을 망치는 '코티졸'이라는 분비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 코티졸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심장병, 당뇨병,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암, 각종 정신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해결책은 반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블랙컨슈머를 만나는 순간 "아! 이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이곳에서 화풀이로 해결하고 있구나!"라고 이해하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낙관적 사고와 말단신경이완요법, 거울대화법, 초간단 명상호흡을 곁들이면 훨씬 유익하다고 강조한다.

가정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감정노동은 5살 이하의 행동과 말을 하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이라고 한다.

정부도 이제는 노동복지 차원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