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햇빛창공]

바짝 마른 들깻단을 보면 가슴이 울컥합니다. 참깻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코끝을 파고 드는 향기로운 냄새가 몸 속 세포를 움찔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농부의 길을 평생 살아오신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겨우 깨만 먹는 참깨보다 여러모로 쓰임이 다양한 들깨가 더 좋다며 예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들깨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썼습니다.

들깨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면 수확하는 손길이 바빠집니다. 우선 잎을 먼저 수확하고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낫으로 가지런히 베어 말립니다. 잎에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면 들깨의 알갱이도 속이 꽉차게 됩니다.

들깨를 베는 일은 아버지를 도와 아내가 했습니다. 촌부가 되더니 뭇하는 것이 없습니다. 들깻단을 짊어지신 아버지는 마치 태산을 짊어지신 듯 보입니다. 운반용 농기계가 보급되어 굳이 지게질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제나 깨를 수확할 때는 고집스럽게 짊어지고 옮기십니다. 전 아직까지 지게질을 배우지 못해 안아서 나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좋습니다. 들깻단을 안으면 아내를 품은 것같이 향긋합니다.



곁눈질 3년에 아내가 이젠 도리깨질도 합니다. 아무리 기계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것이 농사일입니다. 특히 밭농사엔 도리깨와 지게, 갈퀴, 키 같은 재래식 도구가 훨씬 편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들깨를 한 줌 쥐어 바람에 날려봅니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에 수확한 참깨는 두 가마니가 넘어 흡족해 하셨던 어머니께서도 내심 기대하셨는데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쭉정이가 많은 것이 시원치 않어. 꽃이 필 무렵 비가 자주 내리고 가뭄이 심하더니 제대로 영글지 않은 거 같어" 내가 보기엔 예년이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이 알알이 탱탱한데, 왜 일까요.

신발을 신고 다니면 깨가 전부 깨져서 깨를 수확할 때는 장화를 벗어놓아야 합니다. 작은 알갱이가 발바닥 아래에서 꿈틀대는 느낌이 꽤 괜찮습니다.

농사일에 엄마를 빼앗긴 두 아들이 수확현장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주저 앉아 들깨로 모래놀이 하듯 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고소하고 흐뭇합니다.

이틀동안 털고 난 깻단을 가지런히 쌓아놓고 떨어진 꼬투리와 부스러기는 썩혀서 화분과 화단에 거름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몇 알씩 남아있는 들깨가 싹을 틔우고 자라면 들깻잎을 따다 먹을 참입니다.

마른 들깻단은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불쏘시개로 쓰면 그만인데, 부스럭거리는 들깻단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가 추운 겨울엔 여름날의 추억을 기억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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