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이방주] '혼자 걷는 가을 길' 괴산 막장봉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려 못 갔는데 오늘은 막장봉 단풍을 보러 간다. 애초에 칠보산을 가려했는데 친구 연선생이 막장봉 시묘살이계곡이 좋다고 해서 방향을 바꾸었다.

제수리재 임시주차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싸늘하다. 20분 정도 걸으면 막장봉 능선이다. 등마루에 올라가 겉옷을 벗었다. 여기부터 기이한 바위가 많고 주변 어느 산보다 전망이 좋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앉아서 쉬지는 않았다. 영등포에서 온 어느 산악회 사람들이 제일 시끄럽다. 안내하는 사람이 소리를 질러 회원을 부르고 호루라기를 불어 신호를 한다. 어떤 사람은 전망 좋은 바위를 차지하고 서서 노래를 부른다. 막장봉이 아니라 영등포에 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언제나 그렇지만 혼자 떠나는 산행은 쓸데없는 생각이 많다.

막장봉에 가는 길에 바위를 오롯이 지키고 앉아 수백년 세월을 보낸 소나무가 있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가볼 수는 없다. 바위가 험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마치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이 자꾸 가서 만지고 뿌리를 사진 찍고 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소나무를 막장봉 주인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여기서 주변 산을 조망할 수 있다. 남쪽으로 바로 앞에 대야산이 보인다. 푸른 하늘 밑에 그냥 검게만 보이지만 대야산에 다녀온 사람은 그 멋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대야산 정상에서 중대봉에 이르는 산줄기가 장엄하다. 그 너머 속리산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어제 내린 비로 습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여기서 칠보산이 보이고 장성봉에서 백두대간으로 달려가는 산줄기가 장엄하다. 그 너머 희양산도 대머리를 내밀었다.

관평리로 내리뻗치는 산기슭에 단풍이 한창이다. 관평리에서 버리미기재로 향하는 국도가 가늘게 숨었다가 나타났다 하면서 기어간다. 거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송면에서 선유동을 지나 관평에 이르면 잠깐 경상도가 되었다가 다시 충북 땅이 되는 수도 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충북이나 경북이나 사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은 그치지 않는다. 소나무숲 사이로도 길은 나 있다. 나무뿌리를 밟고도 사람들은 기어이 길을 낸다. 바위 절벽에도 줄을 매 놓아서 우리는 아주 고맙게(?) 그 길을 걸어 내려 온다. 그렇게 어렵지만 절말로 내려오는 안부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으로 가는 장성봉과도 갈림길이다. 장성봉에서 백두대간 가는 길은 출입금지 지역이다. 이렇게 산에도 삼거리가 있다. 시묘살이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낙엽에 덮여 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길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흙을 보면 알 수 있고 돌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디고 사람이 다닌 길은 발자국이 나 있다.

계곡이 끝나 절말에서 칠보산 가는 계곡인 살구나무골과 만나는 곳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은 짙어지고 계곡에 물흐르는 소리가 더 커진다. 따라서 길은 더 넓어진다. 산 아래에는 조릿대가 무성하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길을 만든다. 사람들의 욕심은 길은 이런 길에 만족하지 않는다. 문명은 더 큰 길을 원하고 기어이 그런 길을 만들어 놓고야 만다.

사람들은 이렇게 점점 달라지는 길을 어떻게 대할까? 누구도 낙엽이 쌓인 숲길을 걸으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를 보고 떨어진 나뭇잎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생각에 잠길 것이다. 절말 주차장에서 제수리재까지 걸어 보았다. 차가 제수리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가는 한 번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도 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들은 심심찮게 많이 올라간다. 숲길을 네 시간 걷고 포도를 30분 걷는데 피로감은 두배나 되는 것 같다. 무릎이 아프고 발목이 아프다. 땀이 두배는 난다. 계곡의 물소리도 위안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길을 만들어 놓고 참으로 피곤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위적으로 숲길을 만들어 걷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상 부근의 단풍은 이미 끝이 났다. 은선폭포를 지나서야 조금씩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살구나무골과 갈림길에 가까워 오자 절정이다. 산죽과 어울려 더 곱게 보인다. 이제 떨어진 단풍도 좋다. 절말 주차장은 군에서 조림한 단풍나무에 단풍이 한창이다. 이제 물들이기를 끝내면 모두 갈데로 갈 것이다.

제수리재에 도착하여 땀을 말렸다.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보다 볕이 따사롭다. 차들은 아직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생각해 보니 간식만 한 차례 먹고 점심 먹는 것을 잊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도 송면을 거쳐 화양계곡을 지나는 동안 아름다운 단풍 때문에 몇 번이나 차가 기우뚱 거렸다. http://blog.daum.net/nrb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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