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세기를 말하다 <73> 1980년대 터키 '욜' (일마즈 귀니, 1982)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을 수립한 터키는 케말 파샤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터키령의 쿠르드족은 1925년 술탄제 부활을 요구하며 무장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1960년 5월 구르셀 장군의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고 신헌법 제정을 바탕으로 1961년 구르셀 대통령의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1980년 9월 케난 에브렌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데미렐 총리 정부가 전복되고 1982년 11월 케브란 대통령이 선출됐으며 정치적 자유를 규제한 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일마즈 귀니 감독의 1982년작 '욜'은 쿠데타에 따른 계엄령 하의 터키를 생생하게 그린다.

아침부터 새가 노래를 하더니 임랄리섬 교도소에 낭보가 날아든다. 정해진 기한 내 돌아오지 않으면 도주로 간주한다는 등등의 살벌한 경고와 함께 주어진 일주일의 가출옥. 교도소 동기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뒤로 하고 죄수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진다. 꿈에서도 그리던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우르화, 콩야, 디야르바키르 등 멀고 먼 고향을 향해 이들을 태운 버스와 기차는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감미로운 자유의 향기를 만끽하는 행운 같은 건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야간통금에 걸려 5시간을 갇혀있는 동안 세이트(타릭 아칸)는 교도소보다 나을 게 없는 계엄 치하의 세상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듣는다. 그리고 맨발로 달려 나올 줄 알았던 어머니는 병석에 누웠는데 아버지의 새 여자가 2년 전 배다른 동생도 낳았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철석같이 믿었던 아내가 아들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는 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처가로 향하는 메메트(하릴 에르퀸)의 발걸음도 천근만근이다. 함께 보석상을 털었던 처남을 버리고 도망쳐 죽도록 했다는 이유로 의절을 통고받은 그는 "세상이 악몽 같다"는 아내의 편지로 마음이 복잡하다. 무릎 꿇고 고향의 땅에 키스하던 오메르(네크메틴 코바노글루)의 들뜬 얼굴도 마을 입구에서 굳는다. 총구를 겨눈 군인들에게 마을의 남자들이 끌려나오고 여자들이 울면서 뒤따르는 모습으로 쿠르드족의 가혹한 운명을 새삼 되새기는 것이다.

일마즈 귀니는 1960년 이후 반정부활동을 이유로 세 차례 투옥됐으며 '욜' 또한 1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상태에서 만들었다. 귀니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조수인 세리프 교렌이 촬영했으며, 가출옥했다가 스위스로 탈출한 귀니가 편집과 후반 제작에 참여해 완성됐다. 영화 안팎에서 펼쳐졌던 '자유를 향한 위대한 여정'에 대한 지지와 헌사의 의미를 담아 1982년 칸 영화제는 '욜'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고, 당연히 터키 당국은 이를 상영 금지시켰다.

'욜'에서 그려지는 다섯 죄수들의 암울한 귀향기는 '터키 사회가 곧 감옥'이라는 메시지를 명료한 상징과 은유를 통해 역설한다. 가도 가도 황폐한 절망뿐인 이들의 여정은 세이트가 왕복하던 죽음의 염소바위 계곡으로 은유된다. 덜컹거리는 버스와 기차에 의지한 이들의 이동은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이미지와 종종 교차되지만, 그들 모두는 유서프(툰카이 액카)가 애지중지하던 새장속의 새처럼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혀있다.



세상은 특히 여성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가혹하다. 단 한 차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던 세이트의 아내는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8개월 간 쇠고랑을 찬 채 마른 빵과 물만으로 연명해야했다. 그리고 남편과 어린 아들의 냉대 속에 추운 계곡에서 동사한다. "관습에 따라 이제부터 내가 형수님의 남편입니다." 게릴라인 남편의 죽음을 오메르에게 통고받은 네 아이의 엄마도, 그 때문에 마음의 연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또 다른 젊은 여성도 침묵할 뿐이다. 자유연애를 막는 세상의 관습을 '봉건적'이라고 비난하던 남자도 애인에게는 '목숨을 건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결국 들뜬 웃음으로 기약했던 죄수들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처가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야반도주했던 메메트 부부는 열차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려다 모진 수모를 당한데 이어, 어린 처남의 총에 죽는다. 형과 함께 자유롭게 말 달리던 때를 그리워하며 오메르는 쿠르드족 게릴라가 돼 떠난다. 아내의 손발을 얼리고 심장을 멈추게 했던 눈보라보다 더 냉혹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오열하던 세이트도 아마 교도소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 같다.

1992년까지 지속됐던 터키 당국의 '욜' 상영금지와 1999년에야 이루어졌던 극장상영은 이 작품이 체제에 대한 정치적 항의로써 읽혔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1980년대 터키를 억누르는 압제의 근원은 좀 더 멀고 그 파장도 광범하다. '집안의 명예'와 '전통''관습', 혹은 '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 만행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관용, 존중이 없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 구습의 억압 또한 고발한다. 그렇다면 가출옥 증명서를 잃어버려 도로 감옥에 갇혔던 유서프의 처지가 그나마 나았다. 꼬깃꼬깃한 결혼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내를 그리워할 수 있는 감정의 자유와 존엄은 빼앗기지 않았으니까.

/ 박인영·영화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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