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위원·마케팅국장

버락 오바마의 재선으로 막을 내린 미국 대통령선거는 태평양건너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한달간 국내 미디어에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오바마와 롬니의 선거운동을 보도했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미 6개월전인 지난 5월에 여야후보를 확정했다. 주요 신문의 탐사보도팀은 1년전부터 후보들에 대해 철저한 신상털기에 들어갔다. 오바마와 롬니는 지난 10월 3일부터 세차례 TV토론을 갖고 총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시청자들로 부터 검증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방송토론회는 주요 공중파와 케이블방송이 생중계한다. 또 같은시간 AOL과 유튜브, 야후등의 웹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지지후보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뉴스에 단편적으로 보도된 이들의 방송토론회는 살벌하다. 때론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방 공약의 허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거나 윽박지르고 망신을 주기도 한다.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해 이들이 벌이는 날선 공방을 통해 후보의 식견이나 비전, 자질,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청산유수처럼 말만 잘한다고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그나마 방송토론회는 대선후보의 내공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국가경영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걸쳐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는다면 방송토론회에서 금방 밑천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선거가 40여일 남지않았지만 아직도 방송토론회를 한 적이 없고 언제 할지도 모른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 안나올지도 모르는 후보들과 토론을 할 수 없다고 기피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여론에 밀려 후보등록전 단일화에 합의했지만 성사되려면 이달말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합의안에 따르면 둘중에 하나는 방송토론회도, 후보등록도 하지 못할것이 뻔한데 서로 지지율을 올리려고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벤트'나 '정치쇼'라고 비판을 받는 것은 이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서두르든가 단일화를 위한 양자 토론회도 해야한다. 방송토론회가 늦어질수록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공약은 물론 자질과 능력, 비전. 도덕성등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16대 대선에서 54회, 17대 대선에서 27회(단일화 토론회 포함), 18대 대선에서 11회의 방송토론회가 이뤄진것은 이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알고있는 후보자들의 모습은 피상적이다. '대통령의 딸, 선거의 여왕'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박근혜, '노무현 비서실장, 소탈하고 청렴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문재인, '의사출신 성공한 벤처기업인, 젊은이들의 멘토'로 부각된 안철수 등 나름대로 고유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확히 파악하거나 자신의 정체성과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 여부도 유권자들은 모른다. 각 캠프의 전문가들은 맞춤형 공약만 제시하고 있다.

토론회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을 앞두고 실시된 후보자 토론회에서 잠재력을 과시했던 모후보는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적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질문에 쩔쩔매다가 "더 공부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차라리 내가 답변해도 저사람보다는 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후보가 형편없이 낮은 지지율로 고배를 든 것은 이유가 있다.

예측가능한 정치는 선진국의 조건중 하나다. 대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정치쇄신을 이루고 참신하고 투명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세 후보 모두 지지율과의 상관관계를 따지며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면 '정략적'이거나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선거는 당장 다음달로 다가왔다. 이 정도 시기면 아직도 고민하는 국민들은 누구를 찍어야 할지 판단해야할 시점이다. 그래서 방송토론회가 더 보고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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