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여수시청 회계과 기능직 8급 공무원 한 명이 80억7천7백만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공금을 챙긴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급여 내역서나 상품권 환급 서류를 허위로 꾸미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린 다음 그 돈으로 아내의 사채와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를 보탰다. 처남에게는 아파트와 승용차를 사주고 내연녀에게 용돈까지 줬다. 아내는 그 돈으로 외제차를 굴리고, 골프까지 쳤다.

자치단체의 돈을 빼돌려 할 짓, 못할 짓, 별 별 짓을 다 한 것이다.

그가 속했던 자치단체의 전직 단체장은 비리혐의로 구속됐고, 현직 단체장은 그 와중에도 잦은 해외출장을 일삼고 있었다.

분노한 여수시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80억원 공금횡령사건 책임추궁-규탄 촛불행사'를 갖고 '지방세 납부 거부운동'을 선언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횡령으로 얻은 이득금이 5억 이상~ 50억 미만일 경우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50억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나마 5억 미만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아닌 업무상 횡령죄가 적용된다.

그러니 50억 횡령하고, 3년 감옥살이 하면 남는 장사라는 말도 나돌 만하다. 고위직도 아닌 8급 기능직 공무원이 80억 원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면 지방자치단체 조직은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와 같은 횡령들이 도처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이번 수사를 담당한 검찰은 현행 자치단체 회계체제에서는 담당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액을 횡령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예방하려면 △지자체와 지자체 금고의 전산 연계 △세입세출 외 현금 관리의 세분화 △급여 업무와 지출 업무의 겸임 금지 △발의부서와 회계부서에 지급내역 동시 통보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함을 지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횡령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았다.

경북예천군에서도 얼마전에 46억 3천만 원을 빼돌린 일이 있었고, 영동군에서는 10억 원을, 해남군에서는 9억5천만 원을, 완도군은 5억5천만 원을, 목포시에서도 2억5천억 원을 꿀꺽 삼켰다. 이 밖에 제주, 강원 등 수천만 원대 공무원 횡령 사건은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횡령만도 이 정도인데 공사·계약 비리, 뇌물수수 등 전형적인 공무원 범죄를 포함하면 전국 지자체에는 내부 좀도둑들로 곳간이 곳곳에서 새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의 뇌물수수 금액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보도는 주민들을 더욱 황당케 한다.

여수시 공무원은 사채놀이를 하다가, 예천 공무원은 주식투자를 하다가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주식투자를 했다면 근무시간에 했다는 이야기이니 공직기강은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공무원 횡령을 막으려면 업무 순환주기를 단축하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고인 물은 썩는다. 특히 회계 관련 부서의 경우 전문성을 이유로 한 곳에 오래 두면 부패를 방조하는 꼴이 된다.

전산 프로그램도 허점투성이였다. 여수시 공무원의 경우 상급자 결재도 문서 조작, 허위 날인 등으로 무사통과 했다. 통상 기초단체는 자체 감사, 광역단체, 행정안전부, 감사원 등 4단계의 정기·특별 감사를 받지만 어떤 감사기능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하위직원의 비리의 경우도 상급자에게 책임을 묻는 연대책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허술한 회계체계를 점검하고 감사시스템도 새롭게 손질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고 있을 대다수 공직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고질적인 공직비리는 차제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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