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김승혜 용암중 교사

다가오는 새해에는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 선생님이었던 나의 명함 안에 또 다른 이름 하나가 추가될 예정이다. 바로 '엄마'라는 이름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선물해 준 아이의 존재를 하루가 다르게 실감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의 '엄마'였다.

몇 년 전, 엄마는 쌩쌩부는 칼바람을 맞으며 갑작스레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오셨다.

저 멀리 경상도에서 이곳 청주까지, 엄마가 이른 아침에 나를 찾아 먼 길을 달려오신 이유는 단 하나. 어젯밤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내 목소리가 무거워 보여서였다. 객지에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이 혼자 끙끙대고 힘들어할까봐, 엄마는 온 밤을 하얗게 꼴딱 새우시고는 새벽 첫차를 타고 나를 향해 무작정 달려오신 것이다. 엄마를 꼭 끌어안고 한없는 위안 속에 포근하게 잠들었던 그날 밤 이후, 나는 조금 더 강해졌다.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이제는, '내가 그것을 충분히 해 낼 만한 사람'이라는 용기로 바뀌었고, 힘들고 막막하기만 하던 순간마다 뒤로 숨고만 싶다는 나약함이 '내 뒤에는 항상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바로 엄마의 말없는 사랑, 한없는 위안이 나로 하여금 세상에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큰 영양분이 된 것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던 몇 년 전의 제자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아기옷을 사들고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늘 핀잔만 받던 녀석이었는데, "지수도 선생님에게 귀한 자식이니 자꾸만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라고 다른 아이들을 꾸짖어주던 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진짜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 어쩌면 진심을 다하지 못한 표현이었음에도 그때의 내 마음을 잊지 못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 한 편 부끄러우면서도 부모의 마음으로 이 아이를 끝까지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래서 며칠 전, 그 녀석을 만나 다른 고등학교에 재입학할 것을 권유해 보았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이 아이의 인생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제자는 나에게 한 가지 물음표를 던졌다. "선생님, 저 3년 동안 끝까지 잘 견딜 수 있을까요? 저 이번에 다시 입학하면 정말 잘하고 싶거든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세상사람 아무도 안 믿는대도, 선생님만큼은 네가 꼭! 잘 해내리라 믿어. 그러니 너도 너를 한 번 믿어봐." 어제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대답한다. "선생님, 저 이번엔 꼭! 잘 해 볼게요!"

바쁜 일상이지만,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하는 제자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들이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은, 나의 믿음으로 '세상'이라는 토양 위에 조금씩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나의 제자를 지켜보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서 새롭게 깨닫게 된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잘못에 대한 정당한 처벌, 종이 위의 반성문만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바로 서게 한 것이 엄마의 사랑과 위안이었듯이,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때로는 규칙과 규율의 차가운 잣대만을 들이대기보다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교사로서 그리고 앞으로 엄마로서의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리라 상상해본다. / okus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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