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 '사랑의 우동가게'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제적 여건이 통상적인 행복의 척도가 됐지만 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일상에서 느끼는 미미한 행복일지 모르지만 이 것이 바로 아름다운 인생을 누리는 근본적인 지혜다. 인간은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해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충주의 작은 우동가게에서 우동을 끓이며 글을 쓰는 강순희씨는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행복을 큰 행복으로 여기며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충주시 연수동에 위치한 '시인의 공원'을 찾아 가면 그 옆에 '행복한 우동가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60, 70년대의 허름한 목조 선술집을 연상케 하는 이 곳에 들어서면 벽면마다 빼곡히 적힌 낙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우동가게에서는 안주접시를 앞에 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심각하게 인생을 논하는 사람들과 우동국물을 나눠 마시며 빈 주머니를 공유하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떠들썩한 장을 연다.



이들은 희로애락이 담긴 각자의 사연을 안주삼아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으며 가게 안은 항상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이 작은 우동가게가 유명해진 것은 시와 소설, 수필을 쓰는 문학인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소설가 강순희(55)씨가 이 곳에 우동가게를 연 뒤 문학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자연스레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동가게를 열게 된 강씨는 처음에 뛰어난 손맛으로 사람들이 입맛을 사로 잡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끌어 안았다.

1996년 10월의 마지막 밤, 당시 30대 후반이던 강씨는 초등학교와 중학생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우동가게를 인수, 우동국물을 우려내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이 우동가게에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되찾게 됐다.

어린시절부터 문학소녀를 꿈꿔왔던 강씨는 바쁜 남편의 사업 때문에 글 쓰는 일에 엄두도 못내다가 우동가게를 열면서 시간을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가 부인으로서의 윤택한 삶은 그의 감성을 메마르게 했지만 우동가게 주인으로서의 굴곡있는 삶은 오히려 그의 숨어 있던 감성을 자극했다.

가게 안에서 매일 만나는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쓰는 글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됐다.

손님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됐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슬픈 가슴 절절한 사연들을 글로 엮어내는 것이다.

강씨는 가게 한 켠에 한 평도 채 안되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이 곳에서 직접 글을 쓴다.

충주에서 '문향회'(회장 박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1996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소설 '이발사는 가위로 가지치기를 한다'로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했다.

이어 2001년에는 수필집 '행복한 우동가게-첫 번째 이야기'를 출간하고 2003년에는 단편소설집 '백합편지'를 발표했다.

올해는 10여년 만에 '행복한 우동가게-두 번째 이야기'를 출간했다.

'행복한 우동가게-첫 번째 이야기'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썼지만 '행복한 우동가게-두 번째 이야기'는 우동가게에서 강씨와 한솥밥을 먹으며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글로 엮었다.

최근에는 유승준씨가 국내 작가 18명을 소개해 엮은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이라는 책에 강순희씨가 소개 되기도 했다.

강씨는 이 책에서 황석영씨와 밤범신씨 등 유명한 소설가들과 이름을 나란히 올렸다.

유승준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한 그릇의 우동과 한 잔의 술, 그리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이 곳은 음식을 팔고 돈을 받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 늘 울고싶은 사람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이 꽁꽁 언 몸과 마음을 잠시 녹였다 가는 삶의 위안처이자 인생의 아늑한 쉼터"라고 '행복한 우동가게'를 묘사했다.

'행복한 우동가게'의 벽면에 붙어 있는 낙서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익히 잘 아는 문학인들의 낙서가 많이 눈에 띈다.

신경림 시인을 비롯해 도종환 시인과 옥탁번 시인 등이 이 곳을 찾았으며 충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소설가 강준희씨와 양채영 시인, 박등 시인, 조철호 시인, 전찬교 시인, 윤장규 시인 등이 이 곳을 자주 찾는다.

또 이시종 도지사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도 간간히 이 우동가게를 찾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

이 곳을 찾는 문인들은 술잔을 기울이다 얼근하게 취기가 오르면 펜을 들어 즉석에서 시 한 구절을 적어 내려간다.

우동가게를 연 뒤 처음 이 가게를 찾았던 최종진 시인이 "이 가게를 문학의 꽃을 피우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부적처럼 낙서를 써 붙여야 한다"며 낙서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한 둘씩 따라 하더니 지금은 아예 전체 벽면이 빛바랜 낙서장으로 빼곡하게 찼다.

이 가게의 낙서 중에는 자신의 고달픈 삶을 한탄하는 시름과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이들의 사연, 군대에 가는 친구와 우정을 다지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누가 볼 지 모르는 낙서를 통해 자신의 마음에 위안을 삼는 것이다.

'행복한 우동가게' 바로 앞에 위치한 시인의 공원에서는 가끔씩 지역 문인들이 모여 시 낭송회를 갖는다.

행복한 우동가게와 함께 이 곳은 지역 문학인들이 가장 자주 찾는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강순희씨는 "우동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간직한 간절한 사연과 진실한 모습들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삶의 한 부분"이라며 "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정구철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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