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누구인가] 22살때부터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 … 모든 선거 완승 … 34년만에 청와대 귀환

19일 투표 결과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새누리당 박근혜(60) 후보가 당선됐다.

"시대교체를 통해 새 시대를 열어 달라"며 지지를 호소한 박 당선자는 이번 대권 도전에 성공해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다. 박 대통령 당선자는 또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부녀가 대통령에 오르는 진기록을 갖게 됐다.

박 당선자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내내 "무너진 중산층을 70%까지 복원 시키겠다. 오로지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전국을 누빈 끝에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특히 박 당선자는 정치지도자로서 그동안 '원칙과 신뢰', '약속은 분명히 지킨다'는게 강점이자 큰 자산이었는데, 결국, 이같은 점이 첫 대권도전에서 여성 대통령에 당선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속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평이지만 정치입문 이후 지금까지 고수해 온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지도자로서 당이 어려울 때 마다 당을 구해냈다.

'인간 박근혜'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할 뿐만 아니라 드라마틱 하다.



박 당선자는 1952년 2월 군인인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2년 뒤인 1963년 대한민국 제 5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에 들어가 '영애'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1974년 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8월15일 육 여사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급거 귀국해 22살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이후 그는 1979년 10·26 사태로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5년여간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했다.

박 당선자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18년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나 사실상 칩거에 들어 갔는데 육영재단 이사장직과 영남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 하기도 했다. 그는 46세인 1998년 4월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2000년 총재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2위로 부총재로 당선된 그는 2001년 상향식 공천, 당권·대권 분리 등을 골자로 한 '7대 당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이 기간 그는 북한을 방문,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 철도연결'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어 2002년 복당한 박 대통령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등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치고 이어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박 당선자는 천막당사시절에 대해 "그 짧은 길이 천리 가시밭길 같았다"고 회고 한 바 있다. 그는 이후 2년3개월간 당 대표를 지내면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이끌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 당선자는 2007년 첫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는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로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 당내 친박(친박근혜)계의 정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 가기도했다.

박 당선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대선 공약으로 건설된 세종시와 관련, 지난 2009~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자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신뢰와 원칙주의자란 이미지를 크게 굳혔다.

이에 따라 그는 이번 대선에서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등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크게 앞섰다.

박 당선자는 이후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지난 4·11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며 신승해 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 야당이 패했지만 과반에 다소 못미치는 범야권에 표를 던진 민심을 향후 국정운영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표심에 나타난 세대간·계층간·지역간·이념간 갈라진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임정기 / 서울

■ 프로필
출생 1952년 2월 2일(60세)
경북 대구 수성구 삼덕동
본적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가족관계 부 박정희, 모 육영수, 동생 근령·지만, 올케 서향희, 조카 박세현
학력 장충초-성심여중·고-서강대 전자공학
재산 21억 8천104만원(삼성동 자택 19억4천만원, 대구 달성군 아파트 6천만원 등)
주량/흡연 소주 1잔, 비흡연
좌우명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자
종교 무교
정치입문 1997년 12월 한나라당 입당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권선거 당선
주요경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나라당 대표(2004~2008)
국회의원(5선·1998~2012)
혈액형/키 B형/162cm
별명 수첩공주·선거의 여왕
병역/전과 해당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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