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위원·마케팅국장

올 대통령 선거일은 유난히 추웠다. 투표율을 걱정할만큼 한파가 몰려왔다. 강추위는 선거일뿐만 아니다. 후보등록이 시작된 이후 거의 매일같이 동장군이 위세를 부렸다. 모진 추위에 출근할때마다 주목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대선후보 선거운동에 나선 모 청주시의원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동네 사거리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나 후보의 피켓을 들고 지나는 행인과 차량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다음 지방선거에선 반드시 저 사람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여야 대선후보 모두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는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다소 삐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의원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이 약속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가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저 의원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은 1995년 지방자치 실시때부터 시작됐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지난 2006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전문가 65%이상이 반대했지만 국회는 "정당이 후보를 검증해야 무자격자가 난립하지 않는다"며 밀어붙였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왠지 자기합리화 처럼 들렸다. 실제론 더 깊은 내막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이들의 공천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갑을관계'를 넘어 거의 '주종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눈도장을 찍고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녀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헌금 모금행사때에는 이리저리 연줄을 동원해서라도 헌금을 확보해줘야 하고 총선과 대선때 동원령이 내리면 없는 시간까지 만들어서 수행해야 한다. 다수당과 자치단체장이 같은 정당 소속일 경우에는 집행부와 의회는 '견제' 대신 '협조'만 이뤄진다.

아무리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지방의원들은 불안하다. 선거가 아니라 공천때문이다. 시민단체로 부터 우수시의원에 선정된 의원이 해당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밉보여 공천에 탈락한 경우는 흔하다. 지방선거 구조상 이름을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무소속이 당선되는 사례가 거의 없어 울며겨자 먹기로 정당공천에 목을 멘다.

이런 폐단때문에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는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와 전국지방의회협의회가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한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다산리서치가 최근 한국행정학회 소속 전문가 1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방분권관련 전문가 여론조사'에서도 정당공천 폐지에 84.6%가 동의했다.

선진국에서도 지방선거 출마 시 정당공천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기초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 적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수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인데다 지난 11월에는 새누리당 신의진(비례대표) 의원이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관철되기 어려울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2007년 정부가 지방의원 정당공천을 없애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냈고 2008년 민주당 정장선, 김종률 의원이 각각 같은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는 이법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전례가 있다.

이유는 뻔하다. 자신들의 '소중한 밥그릇'을 차버릴 만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새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가능할지 주목된다. 적어도 차기 지방선거 전에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 실천될지 여부가 판가름 날것이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