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년때 중퇴 가방끈 짧지만 한글 맞춤법 책자 두권이나 펴내
책 제작 의뢰차 사업장 찾은 문인 "오탈자 찾으면 소주사겠다" 제안 … 밤새 원고 읽으며 소중함 일깨워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고집스런 삶 속에서 보람과 희열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인생의 최고 가치가 자기만족이라는 점에서 이들이야 말로 자신의 인생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수 있다.

충주에서 광고회사인 '석기시대'를 운영하고 있는 이석신(54) 씨는 사비를 털어가며 자신의 업무와는 동 떨어진 한글 맞춤법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는 유별난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이씨는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과 고집으로 살아가며 누구보다 자기만족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충주시 봉방동 삼원초등학교 앞에는 '석기시대'라는 간판을 단 광고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광고회사의 대표인 이석신씨는 고등학교 2학년 중퇴라는 짧은 학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글맞춤법 책자를 두 번이나 펴낸 별난 이력을 갖고 있다.

충주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인문계고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계인 충주농고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이씨는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친 뒤 학교교육에 대한 한계를 느껴 자퇴했다.



이후 양계장과 지하철 공사장 인부와 광부, 벌목공 등으로 굴곡진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이씨는 20여년 전 충주 중앙시장에 '석기시대'라는 간판을 내걸고 광고업계에 뛰어들었다.

그가 광고업에 종사한 뒤 한 번은 충주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문인이 찾아와 책 제작을 위해 이씨에게 원고를 맡겼다.

국어교사 출신인 그는 "이 원고에는 오·탈자가 없으니 오·탈자를 찾아내면 한 글자에 소주 한잔씩을 사겠다"고 이씨에게 자신있게 제안했다.

이씨는 밤을 새워 원고를 읽으며 여러 개의 오자를 찾아냈고 이 때 처음으로 우리글의 맞춤법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후 자신에게 제작을 맡긴 지역 문학동인지 등에서 많은 오·탈자를 발견하면서 직접 한글맞춤법 홍보에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부족한 한글 공부를 하기 위해 국어 관련 책자 20여권을 독파했고 인터넷 등에서 우리글 관련 사이트를 찾아 내며 한글 맞춤법 공부에 몰두했다.

시중에서 한글 맞춤법에 대한 책자를 많이 구입했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이 쓴 책이다 보니 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이었고 일상 생활용어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씨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글맞춤법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로 하고 밤을 낮 삼아 고생한 끝에 지난 2006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제목의 우리글 맞춤법 책자를 출간했다.

그가 사비를 털어 만든 이 책은 이듬해인 2007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씨의 올바른 우리글 찾기에 대한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로지 '바른 우리말과 글을 쓰자'라는 욕심만으로 2008년에는 '이 것은 책이 아니라 자존심이다'(이·책·자)라는 한글맞춤법 책을 다시 출간했다.

자비로 책을 제작한 그는 이·책·자를 아는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올바른 우리글에 대한 홍보에 적극 나섰다.

이 책에는 바른 말 그른 말과 상황에 맞는 어휘 선택, 복수표준어, 사이시옷, 외래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겹말, 광고·인쇄에서 잘못 쓰는 말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혼동할 수 있는 우리글을 잘못된 표기와 비교해 누구나 알기 쉽게 실었다.

한 번은 충주시장으로부터 "직원 월례조회에 참석해 우리글에 대한 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그의 친구들은 "자칫하다가는 콧대 높은 공무원들로부터 비아냥만 받을 수 있다"며 그를 말렸지만 그는 강의에 임했다.

이씨는 충주시에서 만든 인쇄물과 안내판 등에서 잘못된 표기를 찾아 직접 사진으로 찍고 빔프로젝트를 만들어 공무원들에게 잘못된 표기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처음에 별 흥미 없이 강의를 듣던 공무원들은 이씨의 지적에 차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일부 공무원들은 메모까지 해가며 수강에 임했다.

강의가 끝난 뒤 그는 공무원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함께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최근에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한 눈에 알아보는 공문서 바로 쓰기'라는 책을 읽고 자신이 이 책을 인쇄해 옮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국립국어원에 공문을 보냈다.

몇 번을 거절당한 끝에 어렵게 인쇄승인을 받은 그는 이 책을 '늘봄'(늘 보고 늘 봄이고)라는 제목으로 옮겨 자비로 1천500권을 제작했다.

이씨는 이 중 1천권을 충주시에 무료로 기증해 공무원들이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글 공부를 하면서 우리글의 어원이 한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최근 한자공부에도 매달리고 있다.

한글만 알고 한자를 모르면 절름발이라는 생각으로 800여 쪽이나 되는 한자책을 구입해 지금까지 네 번이나 독파했다.

이씨는 지역의 문화예술 부문에 대해서도 남 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광고회사를 현재의 3층 건물을 지어 옮긴 뒤에는 1층에 '석기시대 갤러리'라는 아담한 갤러리를 마련해 충주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곳에서 미술작품전시회와 사진전시회, 졸업작품전시회, 시낭송회, 음악회 등 각종 행사가 열렸지만 단 한 푼도 사용료를 받지 않았다.

고향에서 편하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준 고향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씨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한글맞춤법과 지역 문화예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정구철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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