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계가 해외에서 잇달아 사상 최대 판매기록을 세우며 승전보를 울리고 있지만, 유독 '홈그라운드'인 국내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는 모습이다.

국산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입차가 늘고 있는데다, 국산차 업체들의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 등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자동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5사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820만여대를 판매하며 5.6%의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5사가 이러한 신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 시장의 약진 덕분이었다. 5사의 실적을 종합해 보면 수출은 7.9% 늘어난 반면, 내수는 정부의 연말 개소세 인하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4.3% 줄었다.

현대차는 지난 한 해 동안 국내 66만7777대, 해외 373만4170대 등 전 세계 시장에서 전년보다 8.6% 증가한 440만1947대(CKD 제외)를 판매했다. 내수시장 부진으로 국내 판매는 2.3% 줄었지만, 해외공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 판매 증가(10.9%)에 힘입어 전체 판매가 늘었다.

기아차 역시 작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7.1% 증가한 272만753대를 판매했다. 하지만 수출은 전년 대비 9.4% 늘어난 반면, 내수는 2.2% 감소했다. 르노삼성차 역시 지난해 내수와 수출이 각각 45.1%, 31.4% 줄었다.

그러는 동안 수입차는 지난해 전년 대비 24.6% 증가한 13만858대를 팔아치우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지난해 자동차 등록통계에서도 수입차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산차의 신규등록이 전년대비 5.1%로 감소한 반면, 수입차는 22.3%로 크게 증가해 전체 신규등록 대비 9.0%를 차지했다.

이처럼 국산차들이 오히려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가격경쟁력 약화가 꼽힌다.

국산차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 이미지를 구축해 매력을 어필하는 동안 오히려 국내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가격을 올리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수입차 업체들은 가격을 내린 신차를 줄지어 출시하며, '같은 값에 이왕이면 수입차'로 갈아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다. 이러한 수입차들의 전략은 어차피 비슷한 가격이라면 '럭셔리 카' 이미지를 구축한 수입차를 선택할 것이라는 국내 소비자들의 심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국내 시장에 고착화된 '옵션 끼워팔기'와 해묵은 '역차별' 논란도 문제다. 차량의 필수 사양을 빼고 옵션으로 선택토록 해 전체적인 차 값을 높인다거나, 수출용 차에 비해 내수용 부품 사양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혹은 국산차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아차의 K9을 예로 들어보자. K9은 당초 벤츠와 BMW 등 프리미엄급 수입차의 대항마로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가격도 5000만~8000만원대로 높게 책정된데다, K9이 자랑하는 첨단 사양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옵션을 선택해야 하는데 만약 풀옵션을 할 경우 전체적인 차 값은 최대 2000만원 가량이 더 올라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K9의 옵션 가격이 차 가격의 30~40%에 이른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사실 국산차들이 수입차에 비해 브랜드 선호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가격 정책은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기아차는 가격은 낮추면서 어댑티브 HID 헤드램프 등의 첨단 옵션은 기본 장착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그제큐티브 트림(옛 노블레스 트림)의 경우 인하폭이 291만원에 달했다.

한편 최근 들어 국산차 업체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다시 붙잡기 위해 가격 인하 등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현대차를 시작으로 기아차, 한국GM이 '고집'을 꺾고 줄줄이 가격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국산차들의 달라진 태도가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재작년부터 수입차를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의 시각이 굉장히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특히 현대·기아차가 내수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20~30대 젊은층의 구매력이 상승한 것이 수입차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가운데 수입차는 가격을 내려 문턱을 낮추고 있어 올해 국내 시장에서 국산차와 수입차간 진검승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며 "국산차들이 등을 돌린 국내 소비자들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지는 가격경쟁력과 품질, AS 등 3대 요소를 얼마나 강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익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 연구원도 '자동차경제' 최신호를 통해 "수입차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이유는 20~30대의 젊은층 판매가 늘면서 수입차 고객층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고 수입차와 국산차 간 가격격차가 줄었기 때문"이라며 "또 최근 수입차 업계가 전시장 및 서비스센터 수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등 공세를 강화함에 따라 앞으로도 국내 시장의 수입차 점유율 상승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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