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기자단 - 수희씨] 노동 르포작가 권터발라프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취업 노동력 착취 등 현장고발

나는 좀 미련하다. 꼭 겪어봐야 느낀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경험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여러 미디어를 이용해 세상을 배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읽지만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참 많다. 게다가 요즘처럼 언론 형편이 좋지 않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는 언론 역할을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가끔 보석 같은 기사를 만날 때도 있다.

'한겨레21'이 보도했던 노동OTL시리즈 기사도 그랬고, '충청리뷰'가 보도했던 청주운천동 피란민촌 사람들 이야기가 그랬다. 이들 기사를 보면 단순한 보도가 아니라 기자가 현장에 뛰어들어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종류의 기사들을 르포 기사라고 부른다. 보통 신문에 실리는 르포는 스케치 기사와 비슷할 때가 많은데 르포 기사는 스케치 기사보다는 보다 심층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고,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뛰어난 문학미를 갖췄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그런 기사다.

르포 기사는 언론이 쉽게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아 가치가 더 빛난다.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이라는 르포 산문집에 나오는 투쟁현장과 노동자, 활동가들 이야기나 공지영이 쓴 쌍용차 이야기 '의자놀이'도 그렇다.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이 발행하고 있는 단비뉴스 취재팀이 발로 뛰며 쓴 '벼랑에 선 사람들'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다.

최근 추천을 받아 권터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를 읽었다.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권터발라프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르포 작가란다. 이 책 외에도 이미 자신이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경험을 기록물로 발표해왔다.

권터발라프는 독일인인데 터키 노동자 '알리'로 변장해 독일 사회가 얼마나 외국인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학대하고 멸시하고 권리를 짓밟는지를 생생하게 고발했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 문제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장이었다.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방사능이나 산업먼지 등 유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일을 하다가 다쳐도 보상은커녕 제대로 치료조차 못하게 하고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았다. 힘든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해 터키 등 외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와 일을 시키면서도 온갖 멸시를 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돈을 벌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보였다.

권터발라프가 몸으로 뛰어든 현장, 생생하게 고발한 내용들은 사회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시간을 준수하고, 보호책을 마련하는 등 한마디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에서도 감독조치에 나서고, 기업들과 협상을 벌이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증거자료가 됐다.

권터발라프가 고발한 기업들은 각종 소송을 걸어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거의 모든 소송에서 사실로 확인돼 책 내용은 변화 없이 지켜질 수 있었다. 권터발라프는 노동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꼼꼼하게 기록하고, 수많은 증거를 수집했다.

권터발라프는 자신을 '알리'라는 터키인으로 꾸며 독일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려 했다. 단순히 노동현장을 고발하고 개선하는데 그친 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보여줬다. 어떻게 '위장'까지 하면서 완벽하게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별나다고만 생각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토록 생생하고 치밀한 기록물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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