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에서 인생을 만나다-4. 인정 넘치는 동부자촌과 신승들 수도처 루훠

무야진타(木雅金塔)를 출발해 루훠로 향했다. 길가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파메이진(八美鎭)까지 29km, 지앙빠춘(江巴村)까지 20km라고 알려준다. 초원 위로는 흰 구름이 커다란 연기를 피우듯 하늘에 걸려 있고, 형형색색의 수많은 찡판(經幡)의 무리가 코발트색 하늘과 대비되어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초원 그리고 거대한 찡판(經幡)의 군락을 바라보며 1시간쯤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던 1호차가 정차한다. 고도 3천845m의 초원 저 멀리 사원이 보이고 그 옆의 언덕 전체가 찡판(經幡)의 깃발로 펄럭이고 있다. 지천으로 피어난 야생화와 사원, 구릉들과 그 위에 나부끼는 찡판(經幡)의 깃발 모두가 이곳에서는 흔희 볼 수 있는 풍광이지만 그 모습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신선함이 느껴진다.

차를 정차하자 철조망 넘어 초원에서 말을 끌고 여인과 아이들이 나타났다. 노란색에 검은 줄이 있는 스웨터를 입은 여인은 분홍빛 셔츠를 속에 입어 멋을 내고 중절모를 쓰고 있었고, 그녀가 끌고 온 말은 검은 갈기를 가진 백마로 매우 단아해 보였다.

그 여인은 우리에게 말을 타라고 권했으나 아무도 말을 타려고 하지 않자 회정스님이 여인에게 10위엔과 사탕, 초콜릿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였는데 그 여인은 우선 돈부터 달라고 하며 촬영을 하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곳에서 그들에게는 사진촬영에 응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며 일이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사진촬영을 요구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았을지 모른다. 하늘이 조금씩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비가 올 모양이다.

오후 5시 즈음 해발 3천900m의 도로 정상에 올랐다. 밑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S자 코스의 길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180도를 왔다가는 그야말로 험난하고 위험천만하며 그 고개 길의 구비가 수십개는 되는 그런 길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이 오지에도 송전탑을 3줄로 세울 정도로 전력보강을 위해 중국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사를 시작해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깊고 험한 곳까지 송전탑을 세우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향후 이 지구를 호령할 수 있는 저력을 비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음에도 길가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그 비를 모두 맞으며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데 먼 산 위쪽에는 맑은 햇살이 반짝인다. 비포장도로를 그냥 달렸다면 먼지 때문에 문조차 열어놓기 힘들었을 것인데 비가 오니 먼지가 일어나지 않아 좋다. 이곳의 먼지는 그냥 시골길 풀풀 나는 그런 먼지라기보다는 여름철 소독차가 달려와 연막가스를 뿌려놓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을 뒤덮어버리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우리가 내려서 사진을 촬영하지 않을 때에는 늘 이렇게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기원을 해본다.



앞서가던 1호차가 갑자기 이정표도 없는 사이길로 접어든다. 온통 진흙길로 엉망이고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차가 제대로 올라갈지도 의문이다. 왜 이곳으로 들어왔느냐고 묻자 춘향오빠는 "삼촌네 집에 잠시 들렸다가 가겠다"고 한다. 공로에서 1km쯤 들어오니 마을이 보였고 도착한 곳이 동부자촌이라고 한다. 짱짜이 마을에서 이곳 동부자촌까지는 209km이다. 동부자촌은 길을 가운데 두고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뒤편으로 사원도 보인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트럭을 타고 일을 하러 떠난 마을은 조용했고 집집마다 대형 덤프트럭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곳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주로 이용해 밖으로 외출을 할텐데 대형덤프트럭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신 마방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본다.

춘향오빠의 삼촌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밍네찌엔이었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는 라마승이었다. 초대된 집의 구조는 1층은 창고와 가축사육장소로 사용하고 2층에 살림을 하는 방이 꾸며져 있다. 집 중앙에 놓인 사다리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한여름인데도 난로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있었고, 안내된 응접실 한쪽 벽에는 온통 달라이라마 영정과 금색 은색의 탑에 작은 옥을 모아 장식해놓았으며, 곳곳에 향을 피우고 달라이라마의 육성이 녹음된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어 이곳에서 달라이라마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밍네찌엔은 갖가지 음료수와 땅콩, 과자, 해바라기씨, 수유차, 야크젖으로 만든 커다란 노란색 치즈, 큰 그릇 가득 담은 씽커가루를 내주었다. 수유차에 씽커가루를 개어 먹으라고 했으나 그 맛이 너무 밍밍하여 먹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 가루를 야크로 만든 치즈를 녹인 수유차에 개어서 먹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씽커가루는 우리네 미숫가루와 비슷한데 어떠한 첨가물도 들어 있지 않아 싱거웠다. 소금이라도 좀 넣어서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조금 먹다가 기권하고 말았다.

이 지역이 개방되기 시작한 것이 2006년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이곳에 이방인들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많이 개방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곳 주민들도 TV를 소지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응접실에는 많은 침구들이 쌓여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오면서 밍네찌엔의 아들인 라마승과 기념촬영을 하고 오후 6시경 따오프현(道莩)으로 출발해 30분뒤 도착했다.

티벳으로 가는 천장북로(川藏北路)의 경유지인 해발 3천50m의 따오프현(道莩)은 타꽁(塔公)에서부터 약 100km의 거리에 위치해있는데 티벳트어로 "하늘에 뜬 길"이라고 한다. 링췌쓰(靈雀寺)는 이곳 따오프현에서 가장 큰 사찰의 하나로 3년전부터 사찰에 황금색 도장을 하기 시작해 이제는 지붕 모두에 황금색 광채를 쏟아내고 있다. 도시 분위기도 상당히 현대화되어 있고, 상가도 현대식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따오프현(道莩)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루훠로 향했다. 루훠로 향하는 길에 호우(豪雨)로 냇물이 노도(怒濤)처럼 흐르는 지역에 차를 세웠다. 평화로운 마을 앞에는 씽커를 재배하고 있었고 옆 삼각산 산자락에는 최상 꼭대기에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전부이고, 냇가 중앙부분 섬에는 버드나무 군락지가 둥글둥글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 아치형 다리와 작은 마을이 보이고 다락논도 보인다. 다리를 완공한 것은 겨우 3개월전이었다. 다리를 지나 한참을 내달리자 이번에는 수문이 3개뿐인 작은 댐이 나타났다. 가두어놓은 물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내리고 댐 우측은 거대한 물살에 씻기어 조금씩 파여들어가고 있는데 발전시설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발전소는 검은 구름에 휘감겨있고 그 위 산에는 햇살이 환하게 비추어 대조를 이룬다. 길은 아직도 흘러내린 토사로 정상소통이 어려운 지경이며,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마을 위쪽으로는 쌍무지개가 떴다. 그냥 무지개도 아닌 쌍무지개가 나타났다고 좋아하자 춘향오빠하는 말이 "이곳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쌍무지개"라며 김을 뺀다.

밤 10시가 지나서야 루훠에 도착했다. 도시는 조용했고, 라마승들이 다른 곳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이 있고, 수도를 하는 선승들이 많아 도시 자체가 일반인과 선승들의 모습이 비슷하게 보일 정도였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단체 손님이 있어 홀이 꽉 찼고, 음식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 마냥 기다려야 했다. 오랫동안 공들여 내온 음식은 너무나 짰다. 특히 탕에 당면과 같은 것을 넣어 끓여왔는데 너무나 짜서 먹을 수조차 없었다. 야채요리는 쓴 맛이 강했고, 고기와 다진 오리 요리도 있었는데 향채가 너무 많이 들어간 탓에 특별한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식사를 마쳤다. 이렇게 여행의 넷째날이 루훠에서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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