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위원·마케팅국장

며칠전 청주권 모 대학교 총장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요즘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청주상공회의소 얘기가 나왔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그 총장은 지나가는 말로 "청주상공회의소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제대로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며 "청주상의 회장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자리냐"고 반문했다.

총장의 말은 많은 지역인사들의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론은 몇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청주상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태호 전회장과 오흥배 회장의 갈등과 리더십 부족으로 청주상의의 위상을 오히려 추락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오 회장은 결국 임기 2년을 남겨놓고 물러났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조직적인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했다"며 "그러나 개혁이 벽에 부딪쳐 사퇴했다"고 밝혔다. 오 회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14년간 장기집권한 이태호 전회장 시절의 뿌리깊은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으나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한채 1년도 못채우고 청주상의의 기득권 세력에 밀려난 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청주상의의 잡다한 치부가 드러났다. "50만원 짜리 저녁을 먹고 100만원짜리 카드결제를 하는 관행이 20년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얘기부터 '이 전회장 퇴임후 출장여비 부당 지급'도 거론됐다. 오 회장의 추구했던 개혁의 핵심이 그것이라면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그런 내용은 회장이 언론을 상대로 얘기하지 않아도 임기내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이 전회장의 14년 집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않다. 무엇보다 청주상의는 3년전 이 전회장이 재임시절 지방선거에서 특정 지사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들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개혁을 얘기하려면 정치적인 중립과 함께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지역경제를 위해 청주상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방경제는 지금 위기다. 지방은 작아지고 낙후돼 가고 있다. 산업인력이 줄어들고 자본이 역외로 유출되는 등 지방경제 기반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로 본 지방경제 실태와 시사점'은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방의 생산가능인구와 기업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10년전 전국에서 지방 사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55.2%이었으나 2011년에는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자금역외유출도 심각하다. 지역 총예금의 약 34%를 담당하고 있는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지역밀착형 금융기관 수신고(213조3천억원)중 36.4%인 77조8천억원이 수도권 여신이나 투자로 빠져나가고 있다.

돈과 인력이 수도권에 흡수되니 당연히 지방경제의 성장세는 둔화될 수 밖에 없고 민간소비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복지지출이 크게 늘면서 소비여력은 하락하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생활여건이 열악해 기업투자도 줄고 있다.

충북경제의 현실은 더 심하다. 산업, 금융, 유통, 건설은 모두 대기업이 판을 친다. 청주산업단지와 오창과학산업단지의 LG그룹 계열사와 SK하이닉스, 중견기업들은 그나마 고용을 창출하고 지방재정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등 대형마트와 현대백화점, 롯데아울렛등 대기업 유통기업이 지역상권을 장악하면서 이들 업체의 본사에서 지역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당연히 성안길이나 전통시장, 변두리 중소규모 아웃렛매장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지역 건설시장도 대기업이 활개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주택건설시장도 대기업이 주도권을 쥐면서 전문건설업체는 지역주민에게 분양하는 아파트조차 시공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국내 대표적인 경제 4단체이자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다.

이들 단체중 각 지역에서 회장을 스스로 뽑고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곳은 상공회의소가 유일하다. 청주상의 회장이 지역경제계의 수장역할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청주상의는 어느 때부터인가 길을 잃었다. 공신력도 흔들리고 있다. 제 목소리도 못내고 있다. 지역경제의 현안을 해결하고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수렴해 압력단체로서 위상을 정립해나가기는 커녕 지역사회로부터 안타까운 시선을 받고 있다.

청주상의는 과연 제대로 된 길을 찾을 것인가. 차기 회장이 반드시 유념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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