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기자단 - 햇빛창공] 두드리고 파내고 토닥토닥 흙으로 만든 아이들의 세상

봄날이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툭하면 내리던 비도 심술궂은 봄바람도 주말이 되니 잦아들었다.

할아버지가 못자리와 각종 씨앗의 모종을 파종하기 위해 마당 귀퉁이에 쌓아놓은 흙더미는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다. 썰매를 타기도 하고, 꼭대기에 올라가 정복했다 폼잡고 소리도 지르고, 틈만나면 구덩이를 판다. 흙을 사용하면서 해마다 점점 낮아져서 어쩐다지.

"아빠 나는 삽이 없어!" 따스한 오후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 흙을 파며 놀았다.

형이 작은 꽃삽을 손에 쥐고 흙을 파는 것을 본 준하가 삽을 찾아달라고 야단이다.

"아빠가 준하에게 꼭 맞는 멋진 삽을 찾아줄게" 맘에 든다며 기분좋게 삽을 받아들고 간 녀석이 갑자기 투정이다.

"이 삽 너무 무겁잖아!" 아무래도 형의 작은 꽃삽이 탐이 나는 모양이다.

"우리 지금 다이아몬드 찾는거다. 아빠~" "준하는 다이아몬드가 뭔지 알아? 다이아몬드는 보석인데." "보석 아니야. 다이아몬드는 반짝반짝 빛나!"



마당의 흙을 파며 세상에 어느 곳에도 없는 귀한 금은보화를 캐고 있는 중일게다.

"다이아몬드는 깊은 곳에 있을거야." 송하와 준하는 경쟁하듯 구덩이를 파들어갔다.

벌써 장화속엔 흙이 가득이고 엉덩이는 흙투성이다.

갑자기 공룡이 나타났단다. 준하는 땅속으로 숨어야 한다며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움크렸다. 흙구덩이에서 나오더니 이번엔 꽃을 심어야된단다.

"마당에 있는 꽃을 캐서 옴겨심으면 되지." "안돼! 씨앗이 있어야 돼." "꽃 씨앗은 아빠랑 지난 번에 다 뿌렸잖아."

이 한 줌의 흙은 무엇이든 된다.

상상만 하면 뭐든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흙은 씨앗이 되고, 밥이 되고, 꽃이 되고, 공룡이 되고, 아이들의 우상인 로봇이 되었다. 어른들의 눈으론 이해도 상상도 되지않는 세상이 흙과 함께 펼쳐진다. 문득 나도 저랬을까? 토닥토닥. 파내고 두드리고 토닥토닥.

"쉿! 이 속에 공룡알이 있어. 아빠~" 흙더미 속에서 돌맹이를 찾아냈다.

"아빠! 다이아몬드 찾았어. 이거 다이아몬드야~" "준하. 그거 돌맹이 아니야?" "아냐! 이거 닦으면 반짝반짝해져!"

그거 아니? 그것보다 큰 다이아몬드가 바로 너란다. 준하야.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도 한 때다. 지루하고 심심해지는 걸까. 햇살이 따가울텐데. 나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들의 가만히 지켜보았다.

대문앞에 묶어놓은 페리에게 달려간다. 따사로운 봄햇살 맞으며 꼼짝않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페리'를 보고는 준하는 "할머니~ 강아지가 죽었어요. 안 움직여요." 했단다.

멀쩡히 살아있는 개를 보내버리다니.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났다. 페리. 작은 발바리 페리이지만 사납기가 호랑이 같은 녀석이다. 극성스럽게 짖기로, 자동차 바퀴 오토바이 바퀴에 달려들기로 소문이 난 녀석이다. 아무리 극성이어도 아이들 앞에선 한없이 얌전한 녀석이 된다. '얼굴 까맣게 탄다', '더워서 땀아 많이 나잖아' 해도 들어올 생각 않던 녀석. 결국 흙 한 줌 집어먹고 나서야 마당에서의 흙놀이는 끝이 났다.

"이그 이놈아~~어부어부 퉤! 열번해야 돼"

나는 오늘 아이들에게 "하지마!" 란 말을 몇번이나 했을까. 꿈꾸는 아이들의 세상에 훼방꾼은 되지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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