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조용필은 1980~9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왕(歌王)'이다. 그러나 그도 90년대 후반 들어 그러니까 조용필 나이 사십대 후반에는 신세대 아이돌에 밀려 화려한 옛 명성은 사그러지고 만다. 가왕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런데 2013년 바로 올해, 그는 19집 'Hello'를 내놓으며 전국적이고 세대를 아우르는 조용필 신드롬을 일으켰다. 18집이 나온 지 십년 만이다. 안 팔리던 CD가 불티나게 팔리고, 젊은 세대도 조용필이 누구인지 물어본다. 도대체 무엇이 조용필을 다시 일으킨 것일까? 그리고 조용필 신드롬에서 한국경제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이십년을 헤맨 일본 경제보다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난 1998년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사실 올해만 문제이겠는가. 이제 우리경제가 저성장 초입이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미래가 더 문제다.

그럼 조용필 신드롬이 한국경제에게 전하는 말을 들어보자. 우선 조용필의 부단한 '자기혁신'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조용필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혁신으로 등극한 가왕.'

조용필은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자기파괴를 지속함으로써 생명력을 유지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화려하게 가요계에 등장했지만 70년대 후반 대마초 사건으로 홍역을 치루고, 1980년에 1집 앨범 '창 밖의 여자'를 들고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창법 등.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사운드와 한민족의 한(恨)과 정서를 담아낸 멜로디에 매료됐다.

이번 60대에 발표한 19집 앨범에서도 조용필의 자기혁신은 곳곳에 녹아있다. 옛날 같으면 60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르와 새로운 시도를 스스럼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조용필은 장르를 통합하고 융합하며 한국대중음악의 용광로 역할을 했다. 조용필이 소화해내는 장르는 실로 다양하다. 그의 노래는 뉴웨이브, 팝, 발라드, 트로트, 포크, 민요, 동요, 소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든다. 조용필은 '한오백년'같은 민요풍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민요를 배웠을 정도다.

조용필은 세대의 벽을 넘어 소통한다. 시대를 뒤쫓지 않고 앞서가기 위해 노력한다. 조용필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난 한번도 당대의 사랑받는 음악을 놓친 적이 없다. 젊은이들의 감각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대의 음악, 앞서가는 음악을 알기 위해 오래도록 AFKN을 청취해 왔으며 지금도 젊은 밴드와 가수의 음악을 듣는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젊은 세대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런 소통이 있었기에 자신을 버리고 스스럼없이 젊은이에게 나아간다.

조용필은 음악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비주얼이나 퍼포먼스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공연과 노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한다. 전주나 엔딩을 줄이고 3분20초안에 강한 메시지와 멜로디를 전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창조경제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장벽을 넘나들고 혁신하고 융합하고 소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그러면서 본질에 충실한 것. 조용필이 한국경제에 보여준 메세지는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파괴하라. 융합하라. 소통하라.'

조용필은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생이다. 그는 한국경제의 현대사와 맥을 같이 했다. 64세인 조용필의 화려한 부활은 곤궁에 빠진 한국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용필은 자신의 19집 앨범의 성공을 보며 '신인 조용필'이라고 자칭했다. 한국경제도 신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화려했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조용필 노래가 바운스(BOUNCE) 된 것처럼 한국경제도 다시 바운스(BOU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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