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나는 최근 몇 해 동안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바람의 서슬이 빌딩사이에서 부딪히는 낯선 땅, 낯선 도시를 숲속의 보물 찾듯 헤매고 다녔다.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에서부터 뒷골목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삶과 문화와 생태와 디자인과 심지어는 그들의 생리적인 근원까지 속속들이 들춰보고 싶었다.

때로는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내가 방랑자처럼 낯선 도시를 떠돌아야 하는지 치매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탐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처 없고 아리송하며 몽매한 상태에서 사는 것 보다 명확한 목표를 갖고 나만의 자존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반드시 그 지역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 그리고 뒷골목 풍경과 전통이 살아있는 재래시장 둘러보았다. 그때마다 전통과 현대, 문화와 예술, 삶과 디자인, 유희와 실용, 인공과 자연이 어찌 이리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인지 부러울 뿐이었다.

며칠 전 필자는 문의면소재지에서 펼쳐진 진풍경에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동네 장날이었던 것 같은데 100여 명의 시골 노인들이 마늘을 가져와 공터에 펼쳐놓고 오가는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릿빛 농부의 거짓없는 삶과 붉은 황토밭에서 일구어 낸 토실토실한 햇마늘이 구순하게 느껴졌다. 마늘 한 접, 한 접마다 옛 방식 그대로 엮어내고 노인들의 입담과 땀내도 싫지 않았다.

사실 세계의 재래시장은 그 지역의 핵심 상권이자 그 곳만의 멋과 맛과 향을 담는다.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문화사랑방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기업화와 대량화, 그리고 산업화에 따라 재래시장이 쇠퇴하고 대규모 점포나 대형마트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단순한 상품교환가치를 넘어 살거리, 먹거리, 볼거리, 추억거리라는 문화사거리 역할을 하는 곳인데 지역 문화의 중심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정체성이 훼손되는 아픔만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벼랑끝의 재래시장을 살리자며 시설 현대화 사업, 특성화 사업, 문화예술 사업 등의 정책 개발을 펼치고 있다.

이미 시설 현대화 사업은 마무리 단계에 있고 특성화와 문화활성화를 통한 차별화 및 경쟁력 높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지 않은가. 문화부에서 전개하고 있는 '문전성시' 사업도 이 같은 이유에서 시작해 올해로 5년째를 맞고 있다.

문전성시 사업이 주목받는 것은 지역의 예술단체와 시장 상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던 재래시장에 문화예술로 춤추게 하기 때문이다.

청주의 가경터미널시장의 경우 예술인과 상인들이 하나가 돼 춤과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주목받고 있으며 옥천의 향수오일장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라는 특성을 살려 향수기차를 운영하면서 서울 수도권 사람들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문전성시는 전국적으로 30여 개 재래시장에서 운영 중이다. 한산오일장은 공예브랜드 '한다'를 만들어 시장 내에 부채, 대장간, 함석, 솟대, 한지 등 그 동네 장인들이 직접 시연과 판매와 교육체험을 운영하면서 인기몰이중이다. 경주시장, 목포 자유시장, 수원 못골시장은 주민들이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그들만의 애틋한 삶과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풋풋한 정을 나누고 있다. 대구 방천시장은 가수 김광석 테마벽화를 통해 특성화 하고 있으며 경북 봉화시장은 보부상축제를,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는 문화다방과 전통놀이체험을 특화하는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제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현대화, 대량화, 기업화, 마케팅 등에 밀려 고전하던 재래시장이 살 길은 문화콘텐츠와 접목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풋풋한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사랑과 추억과 감동이 물결치는 공간으로 가꾸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니 지역의 특성을 살리되 스토리텔링과 공공미술, 그리고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와 퍼포먼스가 물결치는 멋진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지역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쌍끌이가 되고 응원하며 차별화된 마케팅이 필요하다. 행정의 잣대가 우선시되거나 지원에만 연연하지 않고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하는 두레문화, 협동조합 문화로 발전시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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