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위원·마케팅국장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도 지났지만 영화의 도시 부산은 여전히 뜨겁다. 부산영화제가 지난 12일 폐막됐으나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제 내내 잔치같은 들뜬 분위기였지만 영화속 현실은 비극일수도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일본 감독 제제 다카히사의 '안토키노이노치'였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사(孤獨死)'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이 영화는 사다 마사시의 2009년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고독사'를 처리하는 직업이 등장한다. 홀로사망한 노인의 유품정리업을 하게 된 두명의 젊은이들이 죽음을 대면하고 세상과 사랑,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고독사 또는 무연사(無緣死)에 대한 슬픈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말과 무연사(無緣死)와 고독사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무연사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 '인연이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안전망 해체가 가져온 삭막한 현실이 담겨있다. 무연사회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모른채 수개월째 방치되는 사례도 많다. 무연사와 고독사는 이래서 생겨난 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일본에선 사망한지 이틀이 지나 발견된 고독사가 2만6천명에 달한다. 이때문에 1인가구가 31.4%에 달하는 일본에선 3, 40대의 중년층까지 "나도 혹시 무연사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일본에선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남의 나라 얘기라고 하기엔 우리나라 현실도 녹록치 않다. 우리 주변에도 어느새 독거노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충북 청원군 한 가정집에서 50대 후반의 남자가 숨져 있는 것을 친척이 발견했다. 한동네에 살던 친척은 경찰에서 "며칠동안 조카가 보이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 봤더니 방 안에서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남자가 사망한 것은 닷새전인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이에앞서 지난 3월에는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80대 할머니가 숨진채 발견됐다. 나흘간 연락이 두절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회복지사가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이미 싸늘한 시신 상태였다. 또 비슷한 시기 심한 악취가 난다는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상당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지 1주일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60세 남자의 시신을 확인했다. 또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60대 중반 할머니가 자신의 집안에서 숨져있는 것을 이웃이 발견하기도 했다.

신문에 보도된 것중 일부다. 홀로사는 노인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고독사'는 거의 일상화됐다. 흔한일이다 보니 방송뉴스에선 취급되지도 않는다. 앞으로는 사소한 교통사고처럼 신문 사회면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 살아서 잊혀지고 죽어서도 외면당한다면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는 있으나 마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414만 2165가구다. 10년만에 86%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중 상당수는 노인이다. 당연히 고독사도 독거노인에 집중돼 있다. 2012년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19만명으로 전체 노인 589만명의 20%를 넘어섰다. 2035년에는 베이비부머의 이혼과 사별로 독거노인이 343만명으로 늘어나 고독사의 잠재적 뇌관이 될 전망이다.

작년말 현재 충북 노인 인구 21만여명 가운데 19%(3만9천여명)가 홀로 사는 노인이다. 이중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는 노인은 7천500명 밖에 안된다. 노인복지혜택을 받는 독거노인이 고작 이 정도다. 고독사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때문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홀로사는 노인에 대한 건강상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유사시 긴급구조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가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후퇴로 기초노령연금 대상폭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했지만 도시에서도 섬처럼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겐 돈몇푼 쥐어주는것이 다는 아니다. 현관문이 닫히는순간 홀로사는 노인들은 독방에 갇힌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모른채 우리 주변에서 죽어가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나라가 복지국가일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고독사문제는 미래 얘기가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만큼 정부와 지자체에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홀로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고독사'는 우리 모두의 비극적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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