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위원·마케팅국장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유럽 경제대국 독일이다. 실업률이 최고 25%에 달하는 스페인과 그리스는 물론 여타 유럽국가에 비해 월등히 낮은 실업률과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 날로 상승하는 투자심리와 기업환경지수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양호한 성적표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독일경제는 독주하고 있지만 독일도 약점은 있다.

바로 인구감소다. 경제성장은 안정적인 인구구조에서 가능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맞다면 독일의 미래는 매우 심각한 과제다.

인구는 국가든 지역이든 경제성장의 중요한 변수지만 정치적으로도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지역적으론 더 그렇다. 17대 대선을 몇개월 앞두고 이명박 대세론이 거셌던 2007년 가을. 당시 이명박(MB) 후보는 청주를 방문해 지역 언론계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MB에게 "충북은 인구는 적지만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당락을 좌우할 만큼 선거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며 "후보께서 당선되려면 충북지역에 큰 선물을 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말을 들은 MB는 웃으면서 "수도권에서 더 많은 표를 얻으면 되지요"라며 가볍게 잘랐다.

충청권에 대한 MB의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유권자가 적은데 걱정할게 뭐가 있느냐는 투다.

실제로 그는 수도권에서 여유있게 리드하며 차점자인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역대 가장 많은 표차인 530만여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국가든 지방자치단체든 인구가 갖는 경제와 정치의 힘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물론 인구가 많다고 모든 나라가 경제가 성장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많은 자치단체가 정치적 비중도 높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충청권 인구가 많았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충청권을 허투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세종시 원안을 뒤집으려는 생각도 접었을 것이다.

지난 5월 충청지역 인구가 건국 이후 처음으로 호남지역 인구를 추월했다는 보도이후 충청과 호남 정치인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의석수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치르는 2016년엔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보다 30만명 가량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충청권 국회의원 수는 25석으로 호남의 30석보다 5석 적다. 충청권 의원들이 충청지역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반면 호남은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호남 일간지 광주일보는 최근 기사에서 "국회의원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충청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광주·전남지역 정치권은 수수방관하고 있어 호남의 정치적 소외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지역정서를 부추겼다.

이 신문은 민주당 광주시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경제적 피폐에 이어 정치적 역할까지 축소된다면 호남은 더욱 변방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며 "호남 정치권이 당장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번이나 정권을 창출한 호남사람들의 불안과 초조한 심리가 묻어있다.

하지만 과거엔 달랐다.

인구변동이 선거구 조정의 기준이 돼야 하지만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여야간 협상 과정에서 영호남의 몫만 키웠다.

이 과정에서 소위 '표의 등가성과 형평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목소리가 큰 쪽이 이긴 것이다.

인구가 비슷해도 호남 의석수가 충청보다 훨씬 많아진 배경이다.

이젠 상황이 변했다. 호남의 반발에도 의석수는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추월한 상황에서 기형적인 의석수를 그대로 놔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행정구역과 생활권, 농촌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충청권에 유권자와 국회의원 의석이 늘었다 하더라도 영호남처럼 특정 정당으로 쏠림현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과 영호남 삼각구도로 대변됐던 한국정치의 지형도가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의석의 확대는 지역 엘리트들의 중앙 정관계 진출에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정치적인 영향력 확대는 어떤 인물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충청권 대망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음 총선과 대선은 충청권의 정치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