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얼마 전에 해외 유명 휴양지를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후배를 만났다. 어땠냐고 물었더니 대뜸 휴가지 얘기는 안하고 한가지 놀란 게 있다고 했다.

무엇이냐고 했더니 휴가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관광과 놀이에 여념이 없는데, 외국인들은 해변에 누워 책 읽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하며 책 좀 읽어야 되겠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놀랐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후배의 말이 나의 무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바로 독서의 계절이란 무의식을. 가을이면 여기 저기서 떠드는 독서의 계절이 민방위훈련 사이렌 소리만큼이나 무신경해졌었는데, 갑자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더없이 날씨가 좋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계절인데, 왜 하필 독서를 하라고 정해놓고 한바탕 소동을 피우는가?

독서의 계절은 태생이 불분명하다. 어디서 연유되어 이렇게까지 왔는지 여러 가지 설들이 풍성할 뿐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가을이 독서하기 좋은 날씨이니 책을 읽자는 것, 가을이 어느 때보다도 책이 안 팔리니 업계에서 독서의 계절을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한다는 것, 가을은 행복호르몬인 세라토닌 분비가 적어 고독감을 잘 느끼니 독서를 하기 그만이라는 것 등.

이유야 어찌되었건 독서가 나쁘지는 않다. 더군다나 자꾸 신세대는 영상이나 놀이에 빠져들다 보니 책을 더 멀리하고 있어 더더욱 필요한 게 독서다. 일 년 중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열 명 중 네 명이라니 독서는 이미 세태로 치면 한물간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독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고 받아들여 자극을 받고 상상력을 키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좋은 쪽으로 바꿔보자는 것 아닌가.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생각을 다양하고 깊게 해보자는 것이다. 나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관련하여.

그렇다면 수단인 독서를 먼저 내세울게 아니라 지향하는 생각을 내세워 '독서의 계절' 대신 '생각의 계절'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가을이 되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다.

책 얘기를 하니 요즘 시류와 관련하여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경제학의 시조인 아담 스미스가 쓴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은 일찍이 경제와 윤리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연구하던 시기에 경제문제는 윤리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지적이 새삼 생각이 나서다.

다른 하나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윤리적·정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며, 자본주의 정신이 얼마나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가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들이 읽고 싶은 이유는 요즘 모 그룹의 기업어음(CP)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항상 문제가 불거지면 나오는 얘기가 모럴헤저드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였을까 하고 생각하며 혀를 차지만, 이런 문제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가 진보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일정한 윤리와 책임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쉬운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생기고 정해진 룰은 무시되기 일쑤다.

감독당국과 회사에서는 윤리경영을 주창하고 있지만, 번번이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고 수많은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전반적인 도덕불감증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물질숭배주의가 팽배해져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히고 있는 실정이다.

천금 같은 가을이다. 놀러 가기도 좋고 먹고 마시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또, 생각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책을 통해서든 영상을 통해서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더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 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책임과 윤리가 따라야 하는 지 깊게 생각해 볼 일다. 다시 한 번 마구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조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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