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재테크의 기본은 수입과 지출의 관리이다. 수입과 지출은 통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재테크를 잘 하려면 가장 먼저 용도별로 통장을 여러 개 가지고 돈을 관리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놀랍게도 기원전 이천여 년 전 고대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바빌로니아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에서 보면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을 금과옥조로 여겼는데, 이런 기본 원칙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재테크를 잘 하려면 금전통장을 잘 관리해야 되는데, 인생을 잘 살려면 어떤 통장을 잘 관리해야 할까? 바로 감정통장이다. 굳이 감정에 통장이란 단어를 붙인 것은 금전통장과 같이 쌓이거나 줄어드는 현상이 비슷해서이다.

그런데 감정통장은 내 마음에 쌓는 것이 아니라는 게 금전통장과 다르다. 감정통장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쌓아야 한다.

고로 내가 쌓은 통장의 잔고를 헤아리고 느끼는 것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잔고를 많이 쌓았다고 느껴도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느끼면 말짱 허당이다.

감정통장은 계량하기가 어렵다. 또 수시로 변한다. 따라서 금전통장에 비해 얼마나 관리하기가 어려운가. 감정통장을 잘 관리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부단히 지속됐다.

수많은 종교와 도인과 위인들이 어떻게 하면 감정을 관리하고 통제할 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너무도 오묘하여 관리되는 듯 하다가도 엇나가고 벗어난다. 자연상태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감정은 널뛰듯 춤을 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감정통장의 잔고는 들인 시간과 진심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진심이 많이 투입될수록 감정통장의 잔고는 올라갈 확률이 높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무슨 스킬이니 방법이니가 어떻게 첨가되느냐에 따라 수준은 달라진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사회로 올수록 사람들이 감정통장에 잔고를 많이 쌓고 싶은 욕구는 강해지고 있으나, 감정통장은 자꾸 비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사람들은 점점 여유를 잃어가고 불신이 높아지고 불안해 한다. 다른 사람과 연락 수단이 다양해지고 편의성이 증대되고 연락 횟수는 증가하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선,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자칫하다가는 한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나 동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리 다른 사람을 찾아본들 허전함은 더해진다. 관계에서 만족은 여러 사람과의 얇은 관계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깊은 관계가 형성이 될 때 높아진다. 불필요한 관계는 다이어트를 하고,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서는 감정통장의 잔고를 높여야 한다.

또한, 본질은 생각하지 않고 방법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되는지 등에 집착하고,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 발전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지에 대해서는 뒷전이다. 당연히 이문에 따라 관계는 규정되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려지게 된다.

심지어는 이해관계를 떠나 정신적인 교류를 나누어야 되는 관계까지 포함해서. 이런 실정이니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정통장 잔고를 높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관계의 남발과 기만이 늘어갈수록 사회는 피폐해진다. 관계 대신 물질이 자리잡고 인간 대신 이익만 남는다. 과연 무엇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돈 대신 시간을, 물건 대신 사람을 우선한다면 서로의 감정통장 잔고가 높아지고 보다 더 행복하고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감정통장의 잔고를 높이는 것이 금전통장도 잘 관리하는 비결이다.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이 흩날리는 만추에 좀 더 너그러워지자. 나 자신한테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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