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크로노스라는 신이 나온다. 크로노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여섯째 아들로 그는 아버지의 거시기를 낫으로 자르고 자식을 낳으면 족족 삼켜버리는 끔찍한 신이었다.

크로노스는 왜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렸을까? 크로노스가 바로 시간의 신, 세월의 신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세월 앞에 만물은 늙고 사라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이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이다. 옛날 같으면 자식 봉양이나 바라고 있어야 할 세대가 가장 활기찬 인생을 살며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40년대 50년대에 태어난 6075세대들이다. 지금은 6075세대를 신중년이라 칭하기도 한다.

통상 중년이라 하면 40~50대를 말하는 단어다. 그냥 중년이라고 하기에 미안하니까 앞에 '신'자를 덧붙인 모양이다.

신중년 현상은 가요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올 봄에 64세인 가왕 조용필이 신곡을 낼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만 장의 앨범이 팔리고 조용필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것은 신호탄에 불과하였다. 뒤이어 80~90년대 레전드 가수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연말에는 정규 앨범 몇 장 내지 않은 들국화까지 새로운 앨범을 내며 커다란 이슈를 만들고 있다.

아이돌은 돌아온 레전드를 칭송하며 뉴스 한구석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라도 아이돌은 연결이 되어야 하는 모양이 애처롭다.

비록 대중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하나 현재 우리나라의 돈의 흐름과 트렌드를 잘 나타내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동태적으로 누가 소비의 주체이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소비의 주체에 따라 경기, 산업, 문화 등이 요동을 친다.

이미 개발시대를 살며 부를 축적한 6075세대는 남은 여생을 마음껏 즐기려 할 것이다. 하다못해 주택연금이라도 받아 일단 소비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할 것이다.

몇 해 전 일본 동경에 출장갔을 때가 기억난다. 동경 시내에 나름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제법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이 보였다. 함께 있던 일본인한테 물었더니 너무나 당연한 듯 고급호텔의 가장 큰 손님은 연로하신 분들이라고 했다.

이 분들은 일본의 최대 호황기인 60년대 이자나기 경기를 전성기 때 경험하며 부를 축적한 세대들이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과 달라 좀 어리둥절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미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된 것 같다.

6075세대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추호도 없다. 그 분들은 젊은 시절에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였으며, 마침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였다.

그분들이 노년에 그나마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다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와의 공존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젊은 세대는 취업난, 경제난 등에 시달리며 희망의 등불마저 꺼져가고 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변변하지 못한 아르바이트, 시간제일자리, 비정규직 등이 넘쳐난다. 얼마 전에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교대 졸업반 학생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니, 자신과 친한 친구들이 명문대를 많이 갔는데도 취업이 안되어 자기를 부러워한다며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어디 남의 일인가?

반면에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안 좋았던 동남아 국가들은 젊은층이 대세를 이루며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동남아 아세안 국가들에게 자리를 넘겨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외화를 버는 입장이라지만 조만간 젊음을 보유한 국가들은 크로노스의 지혜로 부강해질 것이다.

박범신 소설 '은교'에서 이적요 시인은 노인들을 대변하여 이렇게 일갈한다. '너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걸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너의 젊음은 나도 충분히 경험하였으니 상은 이번에 너희가 받고 내 늙음은 비록 내 잘못은 아니지만 너희도 경험할 것이니 너무 탓하지는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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