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이십 년 넘게 여의도 밥을 먹었다. 여의도는 내 인생의 부분이다. 여의도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마 금융, 정치, 방송의 메카 정도일 것이다. 면적 8.35㎢. 흔히 국토 면적을 가늠할 때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고 하여 어림 말한다. 여의도는 땅에 있어서도 하나의 단위이다.

여의도는 1968년에 제방 공사를 하고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 전에는 모래땅으로 된 범람원으로 주로 방목이 이루어진 곳이었다고 한다.

여의도에 금융가가 들어선 것은 80년대다. 그때만해도 명동에 있던 금융가는 여의도에 가는 것을 꺼려하여 가능하면 더 조그만 면적을 차지하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 중심에서 외곽인 위례신도시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당연히 꺼림칙하다.

그러나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다. 한 세대 30년을 내다보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2013년의 끝자락. 지금 여의도는 쓸쓸하다. 빌딩 숲 사이로 매서운 칼바람이 분다.

이곳이 섬이라는 징후는 다른 지역보다 늦게 피는 봄 벚꽃과 뒤늦게 물드는 단풍잎에서 묻어난다.

계절을 뒤처져 가는 곳이 여의도다. 같은 서울이라 해도 다른 곳에서 지천으로 꽃망울을 터트린 뒤에야 여의도는 슬슬 달아오른다. 여의도만이 지닌 까탈스러움이다.

지금 여의도가 쓸쓸한 건 계절 탓만은 아닌듯하다. 서여의도에 있는 정치권은 국론을 하나로 다독거리지 못하고, 방송가는 늘 솥 단지에 볶는 콩처럼 통통 튀는 뉴스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금융가는 어떤가? 금융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유래 없이 싸늘해져 있고, 살림살이가 팍팍한 금융권은 연일 구조조정에 우울한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안녕들 하십니까'란 물음을 던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풍경은 여의도 셀러리맨을 상대로 밥집을 운영하는 식당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줄 서던 식당의 줄이 줄어들고, 예약이 안 되던 식당이 친절해지고, 핸드폰에서는 비명을 지르듯 식당의 선전문구가 날아든다.

이보다 더 좋은 지표가 어디 있는가.

한 해가 저물며 자문해본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풍경들인가.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일개인이 생각은 부족하기만 하다. 명쾌한 논리는 떠오르지 않고 일말의 회한만 밀려든다.

연말 탓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한 해의 달력을 치우고 새로운 달력을 거는 세밑을 무덤덤하게 보내려고 한다.

매일이 새롭다고 외치며 12월 31일과 1월 1일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자위한다.

그래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자. 쓸쓸해진 연말 풍경은 어쩌면 금융권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은 그에 상응한 것이리라.

우선 당사자인 금융권이 반성해야 한다. 좀 더 투자자에게 투자자편에 서서 이익을 헤아려 주진 못한 건 아닌지. 성심을 다하여 투자자의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건 아닌지.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모른 척 한 건 아닌지.

금융권을 관장하는 곳에도 말하고 싶다. 금융권이 잘못하여 매를 맞는 것은 좋지만 본연의 기능인 금융에 대해서 홀대를 하지 말라고.

서비스업 육성을 한다는데 금융서비스는 중요한 서비스업이다.

100세 시대를 달리고 있는 마당에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금융이 발달해야 한다.

제조업의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금융회사가 없다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멍석을 잘 깔아주어야 한다. 결국 선진화된 금융서비스 혜택은 온 국민이 가져가게 된다.

각 개인들도 마치 신처럼 모시고 있는 '대박'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까지 대박의 늪에서 얼마나 헤매었던가. 대박의 꿈을 쫓는 순간 지혜의 신은 사라진다. 현실은 냉정한 계산과 땀이 필요할 뿐이다.

금융IQ를 높여 이자 한 푼이라도 더 받고,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굉장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소박한 생각과 꾸준함과 관심이 미래를 담보한다.

비록 어려운 한 해를 보내고 있으나 희망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무리 피곤한 낮의 기운도 아침의 정령을 만나면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은 아직 삶이 남아 있고, 최고의 인생은 오지 않았고,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갑오년에는 말처럼 힘차게 뛰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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