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파워인터뷰]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일자리창출 위원장

박상준 논설실장 겸 대기자(오른쪽)가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일자리창출 분과위원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신동빈

[중부매일] 박상준 대기자 = 까까머리 중학생은 어느해 겨울,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동생과 함께 마을을 끼고 도는 미호천 벌판의 눈밭을 헤멨다. 멀리서 산비둘기나 들꿩이 눈속에 처박혀 얼어죽은 것을 발견하면 집으로 가져가 부엌 아궁이에 넣고 구워먹었다. 부친이 오랜 투병끝에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슬하 5남매의 장남이었던 소년은 '가난'이 얼마나 절망에 빠뜨리는지 절실히 체험했다.


신용한(44)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일자리창출 분과위원장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고생'의 흔적을 발견하긴 어렵다. 희고 말끔한 얼굴에 건장한 체격에서 뿜어나오는 당당한 모습, 몸에 착 감기는 수트에 멋진 배낭을 등에 걸친 그의 외모는 월스트릿트의 잘나가는 엘리트 투자자같은 이미지다.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일자리창출 분과위원장
실제로 그는 M&A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회사 '지엘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다. 10여년전인 30대 초반엔 중견재벌 계열사 CEO도 역임했다. 그러나 선배와 함께 투자회사를 차렸다가 온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뻔할 만큼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인생은 드라마로 재현됐다. 2004년 배우 고수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로즈마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때론 거칠고 때론 화려한 인생역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 실패와 절망을 겪었던 체험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줬다는 점이다. 신 위원장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저자에, 청년창업자의 멘토로 부각된 것은 바로 이런 극단적인 체험때문이다.

- 신 대표는 대다수 젊은이들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직장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중견기업 CEO가 됐다. 그렇게 빨리 출세했다면 운이 좋던가 연줄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00% 운이다. 덧붙인다면 시대적 흐름을 읽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난 연세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법학과로 편입해 대학원을 법학도로 졸업했다. 이때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2000년 당시 많은 재벌기업들이 지배구조를 재편했다. 지금은 변호사가 맡지만 그땐 전문가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다. 이때문에 대기업 오너와 자주 만나게 되면서 발탁된 것이다. 어쩌면 시대상황이라는 운이 받쳐줬다고 할 수 있다"

- 이미 젊은나이에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고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았다. 이때문에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도전과 모험을 즐겼기 때문인가.

"고교시절 내 별명이 박학다식이 아니라 잡학다식이었다. 또 호기심 천국이라고 불렸다. 이때문에 많은 경험을 쌓았다. 드라마 '로즈마리'는 당초 운동권 출신 임종석 전 민주당의원이 추천됐으나 정치드라마가 될까봐 작가가 나를 찾아와 내 스토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난 지금도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리스크 테이커' 스타일이고 첨단IT제품이 나오면 사서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어답터이기도 하다."

- 이른나이에 인생의 막장까지 갈만큼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는가.

"30대 중반 극동유화그룹에서 3년차 사장을 맡으면서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을 느꼈다. 재벌기업에서 CEO는 오너입장에선 아랫사람은 직위만 다를뿐 머슴과 똑같다. 처우는 좋았지만 젊을 때 '마이웨이'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함께 투자회사를 차린 첫해엔 후광효과로 110억을 벌어 지분을 늘렸다. 그러나 선배가 몰래 숨겼던 누적된 부실을 감당하기 어렵자 잠수를 탔다. 난파선같은 회사를 뒷수습 하면서 회생불능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어느날 폭음을 하고 아내에게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진 않았다.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 심정으로 재기를 노렸다. 다행히 투자한 회사중 하나가 태양광 관련업체였는데 이 회사가 대박이 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결국 나를 살린 것은 어린시절의 가난과 역경을 곱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상준 논설실장 겸 대기자
-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으로 위촉됐다. 위촉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가.

"인쿠르트 사외이사를 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취업고민을 하는 것을 알았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봉사기관 JAA코리아의 경제교사를 맡으면서 민족사관고 등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멘토링이라는 단어가 없을때 '점프 투게더'라는 모임을 만들어 9년간 매월 200만원이상 써가며 청년들에게 멘토역할을 했다. 현재 1대1 멘티숫자가 240명, 창업자 멘티그룹이 600명이다. 조선일보에 경제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게 청년멘토로 소문난 이유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감동인물찾기프로젝트'를 펼치던 새누리당에서 러브콜을 했으나 두번이나 거절했다. 하지만 2011년 승용차가 폐차가 될 만큼 대형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인생관이 바뀌었다. 첫째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자는 것과 남은 인생은 의미있는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회사를 부사장에게 맡기다 시피 하면서 청년일자리창출방안에 고민해왔고 충북대, 서원대, 일신여고를 비롯 전국의 수많은 학교를 방문해 강연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경제계에 인맥이 두텁다. 충북출신중 경제계에 자신만큼 마당발인 사람도 드물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젊은나이에 대기업 CEO가 되면서 재벌기업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이 회원인 경영친목단체에서 11년간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영입작업 대상이 된 것은 이같은 경력때문이다.

- 아직도 청년고용상황은 썩 좋지 않다. 취업시장의 미스매치도 여전하다. 왜 그렇다고 보나.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대기업 고용률은 10% 남짓이다. 나머지 90%가 중소기업 일자리다. 하지만 청년들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 대학생의 77%가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등을 선호한다. 하지만 선진국인 미국, 영국, 독일, 이스라엘은 청년창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와 함께 취업시장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전쟁같다. 이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선 중장년층과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했지만 일부에선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며 비판하고 있다. 시간제일자리가 정착될 때까지 국민들이 인내해야 한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다양해지면 청년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일자리창출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가.

"첫째는 안심하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창업자는 평균 3년안에 70%가 망한다. 이때문에 젊은이가 창업을 한다면 부모와 주변사람들이 말린다. 이런것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3자 연대보증을 없애고 청년재기펀드 1천억원을 조성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또 창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겠다. 창업은 모험이지만 실패하더라도 큰 자산이 된다. 실패경험이 다시 도전하는데 밑바탕이 되는만큼 창업에 대한 관대한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

- 당신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가. 정치에 나서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대학에서 부잣집 2세들을 지켜보면서 좌절했고 운동권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인생관이 바뀌었다. 전방에서 장군을 모시면서 리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국가, 역사, 민족앞에 어떤 존재감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했다. 이제까지 대기업 경영인, 사업가로서 민간영역에서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퍼블릭섹터(공공의 영역)'에서 일하고 싶다. 마음의 준비도 끝났고 사회적인 검증도 마쳤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 어떤 형태로 참여할지는 상황을 두고봐야 할 일이다"

- 청년벤처를 꿈꾸는 예비창업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난 창조경제의 핵심은 청년창업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리고 삼성고시, 현대고시라는 말이 나올만큼 재벌기업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름지기 젊은이들이 도전과 모험을 즐겨야 한다. 젊음에 배팅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신 대표는 다변가에다 달변가였다. 그는 온종일 말해도 막히거나 지칠줄 모를 것 처럼 지식이 축적돼있고 스태미나도 넘쳐 보였다. 젊은나이에 성공하는 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과도한 자신감과 자만심에 도취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불안한 다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삐끗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겸손했다. 아직도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넘어지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형 인간'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꿈을 이룰지는 모르지만 그의 삶만큼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 sjpark@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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