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요즘 중국에서 한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배우 김수현 때문이다. 배용준이 일본에서 일으켰던 한류태풍은 일본의 국수주의와 혐한류에 빌려 사그러든것과 대조적이다. 김수현이 전지현과 함께 나온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서 태풍이 아니라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땅에 떨어진 외계인이 404년 동안 지구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젊고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는 황당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중국대륙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 김수현이 간첩으로 등장한 영화가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김수현이 맡은 역할은 2만대1의 경쟁률을 뚫은 최고 엘리트 요원 원류환이다. 그는 남파특수공작대 5446부대의 전설 같은 존재다. 하지만 조국통일이라는 원대한 사명을 안고 남파된 그가 맡은 임무는 어처구니 없게도 달동네 바보다.

달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져 가는 원류환에겐 '추리닝'으로 코스프레한 바보 동구와, 날카로운 눈빛의 남파간첩이 겹쳐진다. 700만명이 관람한 이 영화를 통해 2030세대는 간첩을 어떻게 볼까. 김수현의 '살인미소'와 '식스팩'에 여성팬들은 간첩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시대적인 트렌드가 그대로 투영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을 대상으로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의형제', '간첩',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최근에 나온 영화에서 간첩의 모습은 왠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강동원, 김수현 등 꽃미남 스타를 기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간첩'에서 김명민은 남파 22년차로 비아그라 판매상인 평범한 가장이다. 부하직원은 돈들고 튀고 불법주차로 자동차가 견인된다. 역시 고정간첩인 탑골공원 독거노인, 동네 부동산아줌마, FTA에 반대하는 귀농청년 등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북으로부터 암살지령을 받지만 금고털이에 마음이 설레는 모습을 보면 코믹하다.

영화속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인 유호성씨 경우를 보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가 간첩인지 아닌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의심하고 있다. 만약 간첩이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할 이정도다. 중국국적자인 유씨는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채용때 특별채용됐다. 지원대상이 탈북자로 제한돼 있었지만 신분을 속이고 합격했다.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었고 영국유학에 해외에도 12번이나 다녀왔다. 여기에 탈북자를 상대로 대북송금 브로커를 하면서 26억원을 보냈고 수수료로 7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진술을 번복하긴 했지만 그가 간첩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민변을 앞세워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대는 이렇게 바뀌었다. 80년대초 군부독재시대를 소재로한 영화 '변호인'에선 마치 아무죄도 없는 학생들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뒤집어 씌우는것처럼 그렸지만 지금은 유호성같은 정체성도, 정체도 모호한 사람들도 법정에서 자기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북한이 거친언사를 쏟아내고 위협적인 도발을 해도 해괴한 논리로 북한을 감싸는 세력들이 우리주변에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우리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잃었지만 일부 진보단체는 북한의 주장에 편승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우리 해군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고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것이 불과 4년전이다.

천안함사태 때 호주,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지만 일부 진보단체에선 천안함 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언론은 가짜라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전선에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북한의 도발에 늘 긴장감이 감돌지만 우리사회는 공무원신분으로 북한을 수시로 드나드들며 대북송금브로커로 거액을 챙겨온 자칭탈북자를 놓고 간첩이냐 아니냐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오늘이 천안한 폭침사태 4주년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념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수현과 김명민이 간첩으로 나온 영화처럼 우리곁의 친근한 이웃이 간첩이라는 것이 드러나도 크게 놀라지는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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