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교수

평소 저명인사들의 말 속에서 '법과 원칙', '법과 정의'라는 단어들이 함께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관습적인 사용으로 합성 용어처럼 인식되어 크게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었지만 최근 도둑질에 대한 대통령의 새로운 정의(定義)를 보면서 공직자들의 숙고 필요성을 느꼈다.

지난 20일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물건을 빼앗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자기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규제에 따라 빼앗는 것도 도둑질이다"라는 도둑질에 대한 대통령의 가치적 기준을 보였다. 이어 특히 규제개혁에 저항하는 공무원은 반드시 책임지게 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하여 대통령이 철학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공직자가 얼마나 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법보다 복잡한 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즉, 정의(正義)가 명확히 정의(定義)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강력한 주장과 철학은 공염불일 가능성이 높다. 회의 이후 각 부처가 후속 조치를 준비하느라 바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의의 모호성이 상당한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법과 정의', 두 개의 단어는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차이는 기업의 흥망을 결정짓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필자는 법에 관해 일천하지만 기업에 적용하는 법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에서 맞닥뜨리는 주요 환경요인을 보면 1단계에서는 기업의 기술, 자본 등 내부적 환경요건이다. 2단계에서는 시장, 고객 등 외부적 환경요건이다. 1~2단계의 환경을 잘 조성하면 성장의 기초를 이룰 수는 있지만 1~2단계에 공통으로 포함되는 외부적 요인인 법이 제일 중요하다. 특히 정부 주도의 기업 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에서는 공장 설립부터 시장 진입까지 법을 준수하고 정책 지원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정의(正義)는 법의 유연성과 같은 것으로 공직자의 해석에 따라 기업에게는 약과 독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천이 문제이다.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의적(義賊) 이야기를 회고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부도덕한 기존 질서와 법에 대한 도전을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던 의적들은 항상 복면을 해야만 했다.

법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소크라테스도 있지만 법보다 정의를 지키기 위한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루팡, 조로, 로빈 후드, 일지매까지 대부분 의적들은 주류 사회의 외곽에 있었고 도피자였다. 이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벗어나 정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 성장 장애를 없애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법보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조항을 활용해야 한다. '과잉금지의 원칙(過剩禁止의 原則)'이다. 이 조항이 법에 정의를 융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의 해석을 보니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4가지 정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 목표라면 법이 정하는 필요 이상의 규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헌법은 법에서 정하지 않은 범위를 넘어서 과도하게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과도한 징벌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처벌을 금지하는 정의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기업은 과도한 규제법으로 인해 성장의 방해를 받는 일도 있지만 과잉적인 징벌 법에 의해 망하는 기업도 있다. 따라서 법 외 정의는 공익과 사익의 사이에서 균형적이고 비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실례로 충북 소재의 모기업은 김치를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인데 주력 제품도 아닌 기타 제품의 일부에서 인체에 해로운 수준 여부도 판단할 수 없는 미량의 세균 검사에 양성반응이 보였다고 하여 기업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판매, 유통을 금지하였다. 이로 인해 수 백 명의 고용 인력이 일자리를 잃고, 국내 최대 김치 수출기업이 파산 위기에 놓였다.

이런 사례에서 법적 측면에서는 정부의 결정이 옳다. 하지만 모기업의 생산, 품질관리시스템을 보면 미필적 고의도 찾을 수 없고, 검출된 세균이 AI와 같은 파괴력이 있는 무서운 것도 아니고, 실제 급식 현장에서 피해 사례가 없다. 그리고 수 천만 달러의 수출 기업의 도산과 수 백 명의 실업자가 양산된다는 사익의 소멸적 측면을 정의의 해석으로 판단한다면 정의를 포기한 과잉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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