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代에 운명처럼 만난 '한권의 책' 80세에 번역완료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1958년 햇볕 따뜻한 어느 늦가을 오후. 대학생인 한 청년이 모교 정문 밖 다리 위 노점상에서 포켓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고 목차를 살펴보았다. 처세와 극기, 사랑과 기도, 친절의 위력, 미소와 용기, 결단력의 기적, 타산지석의 교훈 등 수많은 일화를 통해 진정한 삶의 예지와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지혜로운 자기 혁신과 구원의 확신을 줄 책임을 직감하고, 이 책을 번역해 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책값을 치렀다. 그러나 청년의 마음과 달리 번역에 처음 손을 댄 것은 5년 뒤인 군대를 제대한 1963년 겨울 차디찬 셋방에서였다. 그나마도 약 100페이지 정도 밖에 번역하지 못했다. 그 후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생활로 바쁘게 살다보니 번역은 먼일이 되었다. 그렇게 미뤄 오다가 정년퇴직한 지 십여 년이 지난 뒤, 비로소 번역을 완료했다. 그 청년의 현재 나이는 80. 청년이 처음 번역을 결심한 때부터 완료하기까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것이다.

책 '짜릿한 인생 역전승의 비결' 역자 이명우 전 충북대 교수. 올해 80세인 그가 서울대 독어독문과 3학년 때 만난 F. 어슬러의 원제 '현대의 비유(Modern Parables)'를 올해 초 번역 출간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동안 20차례나 이사를 다니면서 다른 책들은 폐기처분 된 것이 많았는데, 이 책은 마치 신비한 영물처럼 늘 나를 따라 다녔어요. 55년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책이 닳고 닳아 너덜너덜 3~4조각이 났죠. 송곳으로 꿰매고 기워서 평생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감회가 깊습니다. 마치 어렵사리 자식을 키워서 세상에 내보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우리의 일상생활을 빛내줄 위대한 진리가 숨어있기에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생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번역에 임했다는 80세 노교수의 마음처럼 이 책 속에는 57편의 일화 속에 인생의 지혜와 교훈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자기를 사랑스런 존재로 만들 수 있단다.' p21

'자, 그럼 또, 나도 네게 할 말이 있구나. 아까 그런 나쁜 놈 때문에 인간 전체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흉악한 놈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와 나처럼 올바른 마음씨를 가지고 있단다. 그렇지 않니?' p41

'우리의 수많은 행복과 불행은 대부분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되는 수가 많다. 한 사건을 만났을 때 그 안에 숨어있는 심오한 의미와 그 참다운 의의를 발견해 내도록 힘을 쓰느냐 안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불가피한 일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날씨가 추우면 외투를 꺼내 입으면 그만이다.' p64

'인생이란 진지하게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그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자기 자존심도 높일 수 있는 떳떳한 일터를 찾는 일이다.' p146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기쁨을 샘솟게 하는 희망이 있어서 이것이 그로 하여금 현재의 고민거리를 무사히 뛰어넘고 오히려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행복한 여유를 갖게 해 주는 것 같았다.' p170

20대 청년이던 그를 자기혁신과 용기, 양심, 친절, 변화, 결심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책 속에 숨어있는 진리의 샘물을 길어 올려 현대인의 갈증을 해갈해 줬으면 하는 것이 이 전 교수의 바람이다.

그렇게 여러번 읽은 일화임에도 또다시 밀려오는 벅찬 감동으로 번역을 하다 중간 중간 목이 메었다는 이 전 교수는 세상이 좀 더 평화롭고 안정되고, 사회 구성원 간에 서로 화평하려면 어떠한 위험과 역경 속에서도 오래 참고 견뎌야 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 마침내 신(神)의 가호가 임해 인생을 짜릿한 역전승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뛰어넘을 수 없는 난관은 없습니다. 모든 시련은 하나의 시험입니다. 칠전팔기의 정신만이 짜릿한 역전승의 쾌거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목숨 걸고 노력하십시오.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80세 노학자는 1권에 이어 곧 출간할 2권 번역을 위해 또다시 그의 분신같은 원서와 우정을 나누며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 송창희

333chang@jbnews.com

◆ 옮긴이 이명우는

1935년 충남 천안 출생. 서울대 문리과 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교수로서 정년퇴임,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 연구교수와 서울대 교류 교수, 그리고 전국대학 인문학연구소장 협의회 부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한독사전'과 역서 '켈러 단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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