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흥덕문화의집 관장

살만 루슈디는 소설 '한 밤의 아이들'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고 했다.

인도 대륙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살림 시나이가 겪어내는 인생 역정과 가족사를 다룬 소설에서 이 말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강물과 바람이 만든 적벽이 그렇고, 산꼭대기의 소나무나 낮은 관목들이 그렇듯 한 사람의 인생도 쉬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살만 루슈디가 엮어내는 문장을 읽어가며 가슴이 아팠다. 독립과 분열의 상징이기도 한 살림 시나이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만 한다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지, 한 사람을 그렇게 보려고 하는지, 생짜배기로 아파하고 사랑하며 겪어내는 삶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지, 그저 말만 그렇다고 하는지 의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그대로를 외치는 배부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시대와의 불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 영혼을 달래는 선율을 자랑하는 피아노를 만드는 회사가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전동공구를 만드는 회사가 오히려 노동자들 가슴을 뚫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내 일처럼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몇몇의 몸과 마음은 고장이라도 난 듯 진실을 호도하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인데도 사용자의 자리에 서서 법의 심판마저도 비웃으며 악마성의 댓글을 달아대고 있는 사람, 아니 인간,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것은 진정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뚤어져 있는 세계를 본다.

소설을 읽으며 책갈피를 끼울 때마다 형형한 현실이 느껴져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살림 시나이는 인도 독립일 밤 자정에 태어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타고 났기에 역사적 사건들이 그의 삶을 뒤흔들어 온몸이 쩍쩍 갈라지는 병에 걸려 죽어간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치열하게 살아간 작가들의 무대 속에서 나는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만큼 뜨겁게 타고 꽝꽝 얼어버린 지축을 느꼈다.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엮인 세계를 읽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그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인생이란 말이 생짜배기로 다가왔다.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님을, 공자님의 말씀처럼 누구에게 충고할 일도, 충고 받을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그것이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만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말만 하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어물쩡 문상하듯 말로만 기뻐하고 아파하고 있다.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놓은 적벽과 강물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만 슬픈 척, 끝내 자기만 배부르고 잘 살아야 하는 것처럼 살고 있지 않은지 생살을 째서 확인해 볼 일이다. 윤제림 시인은 '지구가 점점 못쓰게 되어간다는 소문은 대부분 사실인데/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소/어르고 달래면 생각보다 오래 꽃이 피고/열매는 쉬지 않고 붉어질 것이오'(<부석사>)하고 말했는데 '지구'란 말을 '사람'으로 바꾸어 좀 더 설득해보려고 한다. 말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도 보여줄 참이다. 며칠 전에는 생떼 같은 아이들이 수학여행 바닷길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브레이크 없는 차도 아니고 충분히 운전할 수 있는 것을 즐거운 여행길이 되지 못하게 어처구니없이 비틀어버린 저 어둑하고 습진 같은, 가려운데 긁을 수 없는 몸부림을 본다. 검은 리본을 달고 조금이라도 어르고 달래볼 작정이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겠지만 '오래 꽃이 피고 열매를 달아야 할 땅이기에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서 인생을 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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