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꼭 20년전 일이다. 1994년 10월24일 충주호 관광선이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 구석기 유적지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 당했다. 당시 참사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현장은 아비규환에 다름아니었다. 많은 피해자들이 유독가스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채 선채 내부에서 창문을 두들기다가 질식사해 불에 타 형체를 알아 볼수 없었으며 일부는 몸에 불이 붙은채 충주호로 뛰어들었다.

관광선을 화재에 약하고 유독성이 있는 FRP자재로 건조하고 정원을 초과한 승객들이 출입문이 양쪽으로 두개뿐인 선실에 있다가 화재가 나자 한꺼번에 출입문으로 몰리면서 피해가 커졌다. 이날 사망한 사람중에는 주말을 맞아 갓 돌을 지난 아이와 함께 놀러온 젊은 부부도 있고, 회갑여행을 온 노부부도 있었으며 모처럼 계모임에 참가한 주부들도 있었다. 유가족들이 몰려온 현장은 눈물바다였다. YS의 최측근으로 정권의 실세였던 최형우 내무부장관이 사고현장에서 유가족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충주호관광선이 정원만 승선시키고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으면 참사는 방지할 수 있었다. 또 단양선착장에 파견나왔던 공무원이 정원에 맞춰 승선자 명단만 확인했으면 사상자가 줄어들수 있었다.

지난주 전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며 충주호관광선 화재사고가 떠올랐다. 300명에 달하는 희생자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꽃같은 아이들이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TV를 통해 오열하고 졸도하는 가족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20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위기관리부재와 기본을 망각한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형참사가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정부 당국자가 호들갑을 떨어도 세월이 가면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전날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112년째 되는날이다. 1912년 4월 15일 발생한 타이타닉의 침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상 재난사고로 기록됐지만 배가 항구를 출발할 때 만해도 그 누구도 비극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님도 침몰시킬수 없다'는 말이 나올만큼 이전에 건조된 유람선에 비해 가장 웅장하고 안전했으며 당시기준으로 최첨단장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타이타닉도 1천5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뉴펀들랜드해역에 가라앉았다. 침몰 원인에 대해 알려진것만 해도 수십가지에 달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승무원들의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몰고 왔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비수같은 추위가 엄습하는 대서양 바다위에 생사에 기로엔 선 연인의 이별장면은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세월호 참사와 비할바가 아니다. 200여명의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비롯한 승객들은 밖으로 피하지도 못하고 숨쉬기조차 힘든 밀폐된 배안에 갇혀 공포와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고 있다.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공식적인 사고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참사배경을 보면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난다. 미국의 보험 설계사 하인리히는 수많은 사고 통계를 분석해 대형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29건의 소형 사고가 일어나고 그러한 소형사고 이전에 반드시 300건의 징후가 있다고 밝혔다.

세월호도 어처구니없는 징후가 넘쳤다. 경력 1년의 20대 미숙한 항해사가 진도앞 거칠고 위험한 뱃길, 맹골수도에서 여객선을 몰았고 배에 실은 컨테이너와 차량을 엉터리로 관리했으며 20년이 지난 배를 일본에서 가져와 무리하게 객실을 증설했다는 것은 그중 일부다. 가장 황당한 것은 승객들을 대기하라고 방송한뒤 선장과 상당수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탈출한 것이다. 직업윤리도, 영혼도 없는 사람에게 수백명의 목숨을 맡긴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위기시 현장과 부처간 협업과 대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보다 더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위기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다. 충주호 관광선 화재사고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몇년 뒤 464명 정원에 900여명을 태워 적발되기도 했다.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친 지난 2월 경주마리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의 원인은 부실시공이었다. 다중이용시설인데도 대충대충 지은 것이다.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 안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의 목숨보다 한푼의 이익에 집착하는 업체나 직업윤리에 투철하지 못한 종사자들 그리고 무사안일에 젖은 공직자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본과 원칙을 망각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세월호와 충주호 관광선이 그렇듯 대형 재난은 예고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안전불감증에 걸린채 설마하며 방심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고 '대형참사의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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