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요즘처럼 안전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슈화된 적은 없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충격 여파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지난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는 전동차 추돌·탈선 사고가 터졌다. 같은 날 남해와 동해에서는 엔진고장으로 여객선의 회항 사고가 잇따랐다. 지난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육지·바다·하늘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것은 지난달 19일 인천에서 사이판으로 비행한 국내 항공기가 운항 중 엔진 이상을 발견하고도 인근 후쿠오카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비행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전체에 안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고장 난 나라라는 자조적인 표현 속에 총체적 난맥상으로 압축된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듯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안심 관련 공약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고가 난 4월 16일을 '국가재난의 날'로 지정하자는 주장부터 지역맞춤형 재난안전대책 전담조직 신설, 재난위험평가제도 도입, 안전지킴이 양성, 관련 조례 제정 등 다양한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단위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서는 원전 안전 공약도 등장했다. 때 되면 나타나는 고육지책들이 썩 반가울리 없다. 그래도 대형사고 이후 몇 단계씩 업그레이드되었던 외국 사례를 교훈삼아 환골탈태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선다.

오래전 영국의 경우는 되새겨볼만한 하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만들었던 '런던아이(London Eye)'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8월 창조경제 사례로 언급했던 밀레니엄 돔과 더불어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건립되었다. 런던아이는 당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운행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개선한 뒤 2000년 3월 일반인에게 공개된 바 있다. 안전점검에서 32개 관람용 캡슐 중 하나만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기화로 승객탑승이 전면 취소됐다. 해당 캡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자가 없었지만 모든 캡슐을 교체하라는 안전검사관의 권고에 따라 운행이 지연된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국가행사를 앞두고 승객안전을 이유로 운행 연기를 결정한 안전검사관과 이를 과감히 수용한 영국정부가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로 기억된다.

한국의 육·해·공 어느 교통수단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신한류를 모멘텀으로 하는 인바운드 관광특수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지역산업의 기여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지역 내 재난·재해 관련 R&D기반을 토대로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강원도는 세라믹·방재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으며 각종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삼척방재산업사업단이 강원테크노파크에 조직돼 있다.

방재산업은 공공성이 매우 강해 잠재수요가 크며 IT를 접목한 방재기술은 부가가치가 높아 수출 전망도 기대되는 분야다. 대구시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대한민국 물 산업전'을 개최하면서 우수한 환경·방재신기술 제품들을 선보이고 사업화를 견인하고 있다.

고려시대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지눌 보조국사는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땅을 떠나서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숙명을 지고 있다. 땅 위에 살면서 넘어지고 그래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이제는 지금의 진흙투성이, 만신창이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간 완전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방해해 왔던 생각의 왜곡과 편향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생각의 힘은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한다. 나태하고 무책임한 생각의 관습을 훌훌 털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완벽하게 만들어나가는 생각의 습관을 길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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