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이종수 시인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가 시인에게 가장 많이 했다는 말 세 가지가 떠오른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싸워야 큰다'. 요즘 세상에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공자님 맹자님 석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틀어 집대성해놓은 말 같다.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시 쓸 일도 없다 싶다. 부끄럽고 미안하여 저 구덩이 깊이 떨어졌다가 분노로 들끓어 올라온 땅 위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과 촛불의 아우라가 가시지 않고 있다. 아직 살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중음신처럼 떠도는 마음들을 본다.

 남의 일 같지 않기에 눈물이 나고, 사람이 그러면 못 쓰는데 못 되어도 아주 못 되어 빠져서 화가 나고, 화가 나서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분별없는 부잣집 자제가 비아냥거린 것처럼 미개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저 밀림 속 원주민들도 미개하지 않다. 주인과 sh노예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미개한 것이다. 문명과 자본에 달콤하게 젖어 안하무인이 사람들이 미개한 것이다.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릴 만한 슬픔 앞에서도 제 잇속만 차리는 이들은 불편하고 짜증나는 이 난국이 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속내 드러내지 못하고 홍해 물 갈라지듯 갈라지는 저들의 웃음에는 하이에나만도 못한 피 냄새가 난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성격 파탄자처럼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게 굴거나 어느 세력에 조종당하는 거수기와 슬픔 덩어리라고,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제 잘못을 덮고 외면하려고 한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없다. 반편이다.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공정한 보도를 한다는 사람들조차 눈치를 보며 남의 일로 치부해 버리고 복지부동하면서 국민들만 싸움꾼이라고 선동하는 적반하장의 시국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모두 윗자리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이 땅이 뜨거운 사막 같다. 그러면서도 해피아, 식피아, 말도 잘 만들어내며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솥찜질에 처하는 자기들만의 면죄의식, 해리성 망각이 무섭다.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벽은 쇠와 망치만으로 간단하게 해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쉽게 생각한 잘못도 크다.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저들이 바라는 대로 해준 꼴이 되어버린 갸륵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싸워야 큰다. 차라리 때리고 들어오라고 아이들을 독려하는 못 된 마음이 아니라 자유롭고 정의로운 자신을 위해, 당당한 존재감을 위해 싸워야 한다. 마침내 승리보다도 더욱 어렵고 더욱 처절하고 더욱 값비싼 패배를 이겨낼 수 있는 싸움(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백 년의 고독』중에서)이라고 할 수 있다. 마땅한 싸움은 그만큼의 진보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민주주의가 그렇고 소비자의 권리가 그렇고 사람을 위한 기술이 그렇다. 싸움을 부추기면서 잇속을 차리고 권력을 유지하는 거대한 벽을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은 담쟁이처럼 넘는 길도 있지만 함께 지르는 소리일 수도 있다. 애당초 동물이나 사람이나 지나다니는 길 위에 지독한 신념으로 쌓은 벽은 무너져야 마땅하다. 채찍질에 한 둘은 쓰러질 수 있지만 모두가 다시 일어서면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자신을 해방시키는 싸움이었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다시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아가 세 가지라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생기고 손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이 그러면 못 쓰기에 사람답게 똑바로 살려는 것이고, 싸움만을 위한 싸움꾼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존재와 존재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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