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6·4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5일 오전 충북도청 민원실을 찾았다. 민원실 입구에 대형사진이 세워진 것을 보고 공무원들의 순발력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사진엔 꽃다발을 목에 걸고 지지자들에게 둘러쌓여 부인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는 이시종(새정치민주연합) 당선인이 있었다.
그는 피를 말리는 접전끝에 이날 오전 4시가 넘어서 당선됐다. 아마 공무원들은 대형사진을 설치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서둘렀을 것이다. 이 당선인이 봤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7전 7승. 이 당선자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기면서 거둔 성적표는 우리나라 정치인에게는 매우 희귀한 기록이다. 총선 두번과 지방선거 다섯번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것은 자신의 능력은 기본이고 천운(天運)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윤진식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자 정치에 대해 한마디씩 할 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 당선인의 선거불패가 막을 내릴때가 됐다고 전망했었다. 충북에서 새누리당 지지도가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두배이상 앞서고 있는데다 윤진식이라는 브랜드 파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산업자원부장관과 대통령 정책실장, 국회의원을 역임한 거물이다. 이 당선인과 비교할때 정치적 중량감은 더 낫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당선인이 윤 후보를 누른것은 '세월호 참사'라는 외부변수의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서울부터 남하한 정권심판론이 충청권까지 상륙하면서 이 후보가 승리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물론 그가 외부적인 변수만 갖고 선거불패 신화를 쓴 것은 아니다. 20여 년간 쌓아온 선거에 대한 노하우와 행정전문가로서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실하고 치밀한 사람이다. 일에 대한 집념과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뛰어나다.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스케일이 큰 정치인 타입은 아니지만 정해놓은 정책적인 목표를 향해서 집요하게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다.
반면 윤 후보는 지방선거 준비가 소홀했다. 캠프도 '일꾼'보다 '객꾼'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지지율과 화려한 경력을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이 미흡했다. 특히 유권자가 가장 많은 청주·청원권에서 이 당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미리 충북지사 출마를 준비했다면 지역주민과 스킨십도 강화하고 인지도도 높혔겠지만 그럴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 당선인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앞에 놓인 길은 순탄치않을 것이다. 외려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지역정치 구도상 우군이 확실히 줄었다. 초선 지사때는 청주시장과 청원군수, 도의원중 상당수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다. 언제든 도정의 호위병역할을 할만큼 밀월관계였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통합청주시장에 새누리당 이승훈 후보가 된것은 이 당선인의 향후 행보가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통합청주시가 출범하면 시장의 위상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충북도 인구는 150만명이 약간 넘는다. 통합청주시 인구는 83만명 정도된다. 광주광역시 규모다. 충북 인구의 절반이상을 통합청주시장이 관할하게 된다. 예산도 올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청주시장의 파워가 커질수록 도지사의 위상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지사와 통합시장의 정당과 성향이 다르다면 갈등과 반목이 증폭될 소지를 안고 있다. 이제껏 어느 광역자치단체도 이런 상황을 겪어본적이 없다.
이미 이전에도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이 거칠게 파열음을 낸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00년 이원종지사와 나기정 시장, 2008년 정우택지사와 남상우 시장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지난해 이지사와 이기용 전교육감이 맞부딪친 전례가 있다. 이 당선인이 '막강파워' 통합시장과 부딪친다면 도정이 순항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28석 가운데 19석을 차지하며 충북도의회를 장악하면서 집행부와 사사건건 대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 일부 도의원은 '이시종의 저격수'가 될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제야 말로 이 당선인의 도정운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충북도정은 흔들릴 수 있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이 당선인은 향후 4년간 무엇을 남길 것인가. 선거승률 100% 도지사의 진면목은 이제부터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