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지난 주말 청원군에서 가장 오지인 문의면 벌랏마을을 다녀왔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벌랏마을은 도로가 잘 닦인 지금도 청주에서 승용차로 40분은 족히 걸린다. 7년만에 찾은 마을은 예전처럼 소박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농촌체험마을로 소문나면서 마을은 근사한 양옥도 들어서고 개울에는 토목공사도 한창이었다. 7월부터 이곳은 청주시가 된다. 최첨단 IT·BT기업이 즐비한 오송·오창, 번화가인 성안길, 그리고 벌랏마을처럼 시골생태마을이 청주시라는 한 우산속에서 공존하게 된다. 이제 대표적인 도·농·공 복합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주민이 선택한 길이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뿐 아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안주하는 도시는 퇴보할 수 밖에 없다. 대전시와 조치원읍은 공통점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동시에 읍으로 승격했다. 80여년이 지난 지금 대전은 인구 155만명 광역시가 됐고 조치원은 여전히 4만4천명의 읍으로 세종시에 속해있다. '능수버들'과 '호두빵'으로 상징됐던 천안도 1995년 천원군과 통합한이후 인근에 아산탕정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는 늘고 경제적으로 급팽창했다.

반면 퇴보하는 도시는 더 많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0년 기준 전국 144개 도시 중 96개 지역(66.7%)이 도시쇠퇴 징후를 보이거나 진행 중이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다. 5년전 정부에서 기초단체의 자율통합지원에 나섰을때 확실한 지역으로 꼽힌 곳이 충북 청주·청원과 경남 마산·창원·진해였다. 당시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자율통합지원위원으로 일했던 기자가 회의에 참석하면 유독 행안부 간부들의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마창진은 통합됐지만 청주·청원은 무산됐다. 주민의 의사보다 당시 일부 정치인들이 사심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통합은 주민의 뜻이다. 무엇보다 청주시에겐 기회다. 지난해 역사적인 통합청주시를 일궈낸 새정치민주연합 한범덕 시장과 이종윤 군수는 통합시 출범식 조연이 됐다. 대신 스포트라이트는 새누리당 이승훈 당선인이 받게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당선인은 조직통합관리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93년 YS정권때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통합된 직후 산업통상자원부의 초대 총무과장으로 일하면서 조직내부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MB정부 행정구역 통합정책의 결실을 맺었던 창원시를 보면 통합청주시 장래에 기대감을 갖게한다. 인구 11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한 창원시를 보면 시·군통합이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알려준다. 연간 2조3천억원의 예산을 보유함에 따라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졌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29조2천500억원, 1인당 GRDP가 2천600만원에 달한다. 총 사업체가 7만3천개에 달하고, 코스피 23개사와 코스닥 16개사 등 창원지역 본사 소재 상장사만 39개사다. 단일 기초지자체로서는 전국 최고다.

성공적인 통합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반전은 여기부터다. 도시 성장지표만 보면 지역주민은 통합결과에 긍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옛 마산시민의 불만이 높아진 것이다. 통합 3년만인 지난해 마산시민 1천여명이 마산분리 궐기대회를 가졌다. 창원시 마산합포가 지역구인 이주영 의원(현 해양수산부장관)은 작년 9월 마산시 설치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옛 마산시민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개발에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승훈 당선인은 통합과정에서 무엇보다 양 지자체 공무원들의 화학적 결합을 강조했다. 맞는 얘기지만 더 중요한 것도 있다. 광역경제권으로 도약한 창원이지만 성장의 과실이 특정지역으로 쏠리고 개발과정에서 지역안배에 실패했다면 시민들의 마음속엔 반발심리가 싹틀수 있다.

통합엔 후유증이 따르지만 통합청주시 미래는 밝다. 다만 도시가 성장한다고 시민 모두 '삶의질'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불균형을 초래하면 '통합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다. 외형적인 성장지표 보다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의식'과 정서적 통합이 더 소중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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