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표언복 목원대 국문과 교수

아는 게 많아 박식한 사람을 두고 '견문이 넓다'고 한다. 보고 들은 게 많다는 뜻이다. 이 때'보는 일'은 직접경험을 뜻하는 말이고 '듣는 일'은 간접경험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박식한 사람'이란 직간접 풍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직접경험은 스스로 '(해)보는 일'이다. 이에 반해 말이나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 경험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듣는 일'이다. 시공의 제약 속에 사는 인간이 모든 일을 다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 이런 간접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보고 듣는 일,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은 지식의 씨줄이고 날줄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이 언제부터인가 듣는 일 중심의 간접경험 위주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육이 오로지 교실 안에서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다시피하는 게 그 것이다. '책'이라 했지만 사실은 책이랄 수도 없는, 교과서와 참고서일 뿐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늘 학교-학원-집으로 연결되는 동선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다. 눈으로 읽는 교과서나 참고서와 귀로 듣는 교사와 강사의 설명이 전부인 간접경험 일색인 셈이다.

시청각 자료를 이용한 IT교육이라서 다를 리도 없다. 놀이나 운동과 같은 교실 밖 활동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문제아들의 일탈 정도로 치부되고, 책과 교실을 벗어난 여행이나 물놀이, 들놀이 등은 경쟁에서 밀려난 학생들의 한가한 시간놀음 정도로 인식되는 분위기이다. 학교는 '야간자율학습', '방과후 수업'이란 구실로 밤 늦도록 학생들을 붙잡아 두고, 방학이면 '보충수업'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교실 안에 가두어 두고 싶어 한다.

집에서는 집에서 대로 아이들이 틈 내어 잠시 TV 앞에만 앉아 있어도 엄마는 서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친구들 만나 밤늦게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올라치면 아빠는 벌써 낯빛이 변한다. 교육 당국은 이런 교실 속 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답사'니 '체험학습'이니 하는 등의 교육과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자율성이 제한돼 허울 좋고 무늬만 그럴싸한 활동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대학 진학이 지상의 목표가 되고 시험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금의 교육풍토 속에서, 학생은 언제나 교실이나 집 안에 가두어 통제하고 모든 걸 다 부모나 교사의 관리 감독 아래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류와 시행착오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교육은 여전히 체력은 허약하고 인성은 거친 대로, 공동선의 구현이 아닌 이기적 욕망 실현만을 목표로 하는 시험 잘 보는 '범생이' 들만을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이론을 다 들먹이며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해 온 입안자들은 지금의 과도한 관리 감독형 교육제도의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다는 듯 '수행평가'니'자기 주도적 학습'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워 북을 울려대고 있으나 또 다른 간섭이며 가외의 통제일 뿐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교육은 갈수록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홍익인간'이니 '전인교육'이니 하는, 참으로 휼륭한 교육 이념이나 교육 목적은 액자 속에 갇혀 선언적 구호로 전락한 지 오래고, 학생들의 학력은 우려할 수준을 훨씬 넘었을 만큼 곤두박질해 있는 게 그 증좌이다. 갈수록 떨어지고 날마다 거칠어지는 체력이나 인성도 그렇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절망하는 사실인데, 우리 사회는 이를 전혀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두렵고 안타깝다. 이는 명백히 학생들을 교실 안에 가두고 오로지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 모든 교육목표를 구현하고자 하는 터무니없는 교육정책 때문이다.

서둘러 아이들을 교실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교과서와 참고서로부터 풀어 주어야 한다. '듣는 교육'으로부터 '보는 교육'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져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체험하며 터득해 가는 직접경험을 통한 교육이 중심이 돼야 한다. 성적? 그건 어차피 절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열패감을 안겨주고 제한된 소수의 학생들만이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이 모순덩이 성적놀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삶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교육이란 이름으로 옥죄고 있는 고삐를 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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