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부국장 겸 정치행정부장
낙선 목적 교묘 유포 … 이종배·한범덕 곤혹
중세 유럽에서 '종교·왕정 체제' 전복수단
작가·후원자 화형·교수형 가혹한 사례도

'카더라 통신'으로 정치판에 종종 등장하는 후보자의 성추문 의혹은 일반인에게 소소한 흥미거리에 불과하지만, 당사자들의 고초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가치를 훼손시켜 낙선에 목적을 둔 일이라 공격자는 궁리를 거듭해 생산한 후 정교한 수법으로 유포하는 게 일반적이다. 터무니 없다하더라도 만질 수록 커지는 특성 탓에 해명이라도 하면 의혹을 키워 제작자 의도에 휘감기기 십상이다. 정치판의 포르노그래피 이다.

성적자극을 목적으로 신체나 행동을 묘사한 것을 통칭하는 '포르노그래피'는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물 정도로 간주된다.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당사자의 경륜과 인격을 땅바닥 내려 꽂는 공격성과 파괴력을 지닌다. 그래서 16C~19C초 중세·근세 유럽에서는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공격하려는 효과적인 수단 이었다. 주로 삽화·만화로 묘사한 포르노그래피는 성직자나 봉건왕정을 '타락한 성'으로 덧씌워 권위를 파괴하는 유효한 수단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체제 전복 도구였다.

정치가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이전에는 성직자들이 공격 대상이었다. 최고 권위와 도덕의 상징적인 교회나 성당에서 성직자들이 방탕한 성을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나 만화는 피지배 계층에 잘 먹히기 마련이다. 성에 대한 표현 방식을 엄격히 통제했던 시절이라 돈 벌이용으로 이 일을 했던 작가들조차 고초를 겪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체제 전복용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흥미와 지배세력에 대한 불만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창구'였다. 비록 위험성은 컸지만, '섹시'하기는 그만이었을 것이다. 1789년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 직전 지배세력을 조롱하는 포르노그래피가 홍수를 이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폭정이나 전제정치를 성적 타락에 연관시킨 것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백제 의자왕은 '3천 궁녀'와 같은말이 됐다. 백제의 면적이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였던 점과 인구 밀도를 고려하면 3천 궁녀 조달은 불가능 했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따질 것없이 사실로 통용된다. 최후의 고려왕 공민왕은 '씨'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포르노그래피'가 있었다.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에게도 성적 타락이라는 굴레가 씌어졌다. 지배세력간 충돌에서도 마찬가지 양태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보면 포르노그래피는 체제 전복세력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충주 7·30 재보궐선거 이종배 후보가 2년전 30대 식당 여종업원에 성적 수치심을 줬다는 문자메시지가 나돌아 곤혹을 치렀다. 당사자가 이 후보와 무관하다 해명해 일단락되긴 했지만, 피해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6·4 지방선거에서는 '한범덕 후보(전 청주시장)가 '불륜 사생아를 절에서 키웠다'는 내용의 문자가 유권자들에게 대량으로 유포됐다.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는 낙선했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다.

조한욱 교수(교원대)는 1996년 발간한 번역본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원작 린 헌트)'를 통해 중세, 근세초 포르노그래피 작가와 후원자에 대한 왕조의 가혹한 처벌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프랑스 법원은 1655년 이런 류의 책을 낸 작가와 출판 후원자를 화형했다고 소개했다.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작가 대신 만든 허수아비를 대중 앞에 끌어내 상징적인 교수형에 이어 화형까지 했을 정도로 가혹했다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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