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그는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다. 그렇게 깊은 곳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지만 가차 없이 전진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빛과 공기를 맛보지 못하면서도 한마디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어두운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신념에 의해 인도되고 있고, 그의 노고가 어떤 위로를 통해 보상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가? 그는 자신이 무엇에 도달하게 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즉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긴 암흑과 이해하기 어렵고 은폐되어 있으며 수수께끼 같은 일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읽고 있는 니체의 '아침놀' 서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번역에 따라서는 '서광曙光'으로도 붙여진 책. 이 책은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의 철학 근간을 말해주는데 앞서 말한 땅밑은 '깊은 밤'이자, '심해의 괴물들이 다투는 곳'이자, '무시무시한 충동과 욕망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학하는 사람은 그렇게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며 '도덕'과 '풍습'에 얽히지 않고 사유하여 실천하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신'이 죽어버린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치유하고 가야 하는지, 그렇다고 지름길로 질러 가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병에 걸린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극소량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듯이 천천히 가야 한다고. "강이 흘러가는 도중에는 강과 숨바꼭질하며 섬, 나무, 동굴, 폭포로 짧은 목가牧歌를 짓는 곳이 있듯이, 다시 바위를 넘고 가장 단단한 암석을 뚫고 계속 흘러가듯이 침묵과 고독을 생짜배기로 안고 있는 기다림을 시간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으로 감동하더라도 현실은 만만치 않아서 수없는 피드백을 해야만 하는 지난한 길이 도사리고 있다.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분노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마치 책을 읽고 난 교만을 시험이라도 하듯, 신밧드 이야기에 나오는 빼빼 마른 노인처럼 어깨에 올라타고 부려먹을 때가 있다. 지쳐 쓰러져도 소용없다. 기어코 일어나게 하여 조종된 길로, 타협의 길로, 복종의 길로, 천민의 길로 가게 하는 현실주의자가 되게 함을.

그래서 니체는 하루일을 마치고 저녁놀을 바라보며 반성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한다. '두더지'처럼 땅밑으로 파고들어 일하다가 새벽을 맞이하는, 무엇인가 새롭게 도래하는 새벽의 독수리에 비유하고 있다. 새벽은 더디 온다고 했다. 봄조차 그렇다고 했다. 민주주의 또한 그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 이뤄놓은 듯했다가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암울한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가라앉아가는 배를 부끄럽게 바라보고만 있는, 사유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어른의 질곡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밑줄만 치고 감동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니체의 아침놀, 서광을 위한,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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