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 흥덕문화의집 관장

그는 선량한 시민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가장이자 애처가다.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누구를 만나도 꿀리지 않는다. 일 또한 꼼꼼하게 해서 그의 물건을 한 번 써 본 사람은 특별한 사후서비스가 없어도 불만이 없을 정도이다. 뒤를 돌아보거나 후회할 일이 없으니 그의 입지전은 좌중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걸어 다니는 교과서이자 자기계발서이다. 즉석에서 뽑아낸 한 잔의 이야기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다. 다 옳은 소리이기에 누구도 그의 말에 딴죽을 걸 수 없다. 학벌은 조금 떨어지지만 학맥 못지않은 인맥을 자랑하여 그의 손을 거치면 일이 술술 풀리는 기적을 맛보는 사람들이 많다.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탁월한 수완 덕분에 구설수에 오르는 것 뿐 그가 쌓은 철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탈세를 한다거나 뒷돈을 받아 챙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어서 선거철만 되면 이쪽저쪽 정당의 영입 1순위에 오르내린다. 아침에 마을길을 쓸기만 해도 기초의회 의원에 나오시라고 그러면 뽑아주겠다고 인사치레를 하는 이웃 사람들의 인사마저 호사다마로 여기며 입을 꾹 눌러 닫고 산 지가 오십 해가 지났다.

 여기까지 읽다 보니 무슨 소설 쓰냐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저 밀림의 느릿느릿한 느림보도 우리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슬쩍할 수도 있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청렴결백할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거나 그런 사람 지루하다고 얼른 채널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뭔가 털어서 흠을 잡고 싶은 괴팍한 심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유력한 상대당 후보로 뜨면 여자 문제든 흔한 계모임 회비 문제라도 조작을 해서라도 흔들고 싶은 충동이 일지도 모른다.

 분명 소설 주인공이 아니다. 미화된 자서전의 주인공도 아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그러나 일부 독자분들이 댓글을 달 법한 감동이 없는 인물이기는 하다. 너무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못하듯이 적당히 무지러지고 적당히 누추한 현대 자본주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그런 것가지고는 만인에 대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평판을 그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위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더 많은 인간 매력이 있는데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든가, 타고난 도덕군자라든가, 모범 시민이라는 꼬리표가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몸매를 위해 입었다는 코르셋을 입은 것처럼 그런 말들 아니고는 어디로든 운신을 못할 만큼, 딸아이가 가끔 농담조로 가끔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주어야만 인간 냄새가 난다고 하는 말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것이다. 고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한 번 든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져 바세린을 바른 실험박쥐처럼 끝내 닦아내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일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진면목과 독자들이 기대하는 군내 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그는 도덕군자이자 모범시민이고자 산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쓸데없는 이판사판의 논쟁만 불러올 것이기에 스스로 갑옷이 되어버린 평판에 더 이상 과민하게 대응하지 말고 살아온 대로 살아가길, 시민K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이마저도 위선이라면 여러분 스스로 시민K가 되어보시길 바란다. 요즘 새로 뜨는 팩트와 픽션의 조합어. 팩션으로 삼국유사 못지않은 기이(紀異)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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